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 시사로 반 총장이 지지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어느 쪽과 손을 잡을지 관심이 쏠린다. 정치권에서는 반 총장을 여권, 특히 친박계 후보로 평가한다. 하지만 총선 참패 이후 친박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 ‘친박=반기문’ 공식이 성립되면 오히려 반감을 살 수 있어 반 총장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다. 그렇다고 자기 세력이 없는 반 총장이 여권 최대 세력인 친박을 배제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일각에서는 총장 임기 내에 자기만의 독자세력을 구축한 뒤 친박계를 지지세력의 하나로 흡수하는 모양새를 갖출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반 총장은 30일 경주에서 열리는 ‘유엔 NGO 컨퍼런스’ 참석과 방한 관련 기자회견을 끝으로 6일간의 체류 일정을 마친다. 입국 첫날 “(총장 임기가 끝난 뒤)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그때 가서 고민하고 결심하겠다”며 예상을 깨고 대권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던 만큼 반 총장이 출국 직전 어떠한 메시지를 던질지 주목하고 있다.
여권은 반 총장의 방한으로 모처럼 대권과 관련한 여론의 주도권을 찾아와 고무적이지만 자칫 반 총장이 고건·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사례를 재연할지 내심 긴장하는 분위기다. 과거 대선 후보로 거론됐던 이들은 기존 정치에 실망한 무당층의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개인의 경쟁력 약화와 세력 부재로 낙마했다. 이 때문에 반 총장이 대선에 나서려면 세력을 형성해 대오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 총장이 이번 방한 때 대권 행보 논란에도 외교관그룹과 원로그룹, 충청 맹주인 김종필 전 총리를 만난 이유다.
반 총장이 당장 친박과 손을 잡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기 세력 없이 친박과 손을 잡았다가 대망론에 이상기류가 감지되면 토사구팽이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야권과 비박계의 흔들기에도 버틸 수 있는 ‘친반기문 세력’의 구심점을 만든 뒤 자연스레 친박을 끌어안는 전략을 쓸 수 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반 총장이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친박 후계자가 아닌 여권 지지자들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며 “한때 대망론에 머물지 과거 이회창 전 총재처럼 영입인사에서 대통령 후보로 자리매김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류호기자 r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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