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방송되는 KBS 1TV ‘다큐공감’에서는 기구한 운명과 서로의 손마저 꼭 닮은 엄마와 딸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기에 더 애틋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 엄마의 손을 만난다.
전남 함평의 양재마을. 딸 모정숙(60)씨는 이 마을에서만 40년간 방앗간을 운영한 안주인이다. 맛있는 제철 떡으로 전국에 입소문이 자자하다.
4, 5월 봄 향기가 가득한 요즘 제철 떡은 쑥 시루와 쑥 인절미. 정숙 씨의 친정엄마 양신안(88)씨는 매일같이 쑥을 추리러 딸네 방앗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딸이 방앗간을 열고 줄곧 딸을 도우러 왔다.
하지만, 정숙 씨가 서른아홉 되던 해, 방앗간 기계에 왼손을 잃고 이듬해 엄마마저 방앗간 기계에 왼손을 잃으면서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모녀가 되었다.
엄마가 집에 돌아갈 때면 끌고 온 밀차는 딸이 채워주는 반찬거리와 떡으로 바퀴가 내려앉는다. 딸에게 가장 가슴 아픈 사람은 엄마다.
내 한 손 잃은 건 상관없지만, 엄마까지 잃었을 땐 정말 죽고 싶었다. 내 탓이라 생각해 살가운 말 한마디 못했고, 엄마 집을 지척에 두고도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 엄마 손을 보는 게 힘들었다.
정숙 씨가 손을 잃었을 땐 사회생활을 하던 아들 삼 형제 이명호(41)·이명옥(38)·이명화(36) 씨가 차례로 달려와 방앗간을 도왔다. 한때 정숙 씨 속을 썩였던 남편 이동곤(70) 씨도 완전히 개과천선해 방앗간 안팎으로 아내의 손을 대신하는 버팀목이 되어줬다. 그런데 엄마 곁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하지만, 석 달 만에 찾아간 엄마 집에서 딸은 깨닫는다. 딸의 집에 갈 때면 집 앞 텃밭의 부추 한 줌, 길가에 난 쑥 한 포기라도 뜯어가고 싶어 지긋한 나이에 사서 고생을 한 엄마. 오랜만에 딸이 집에 온 것만으로 수다쟁이가 되는 엄마의 모습에 딸을 향한 애끓는 모정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방앗간으로 돌아갈 무렵. 방앗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툇마루 끝 낡은 의자에서 엄마가 손을 흔든다. “내려가는 거 볼 테니까 얼른 가.” 덤덤한 한마디에 딸의 눈물샘이 기어이 터지고 만다.
지긋지긋했던 방앗간 생활이었다. 한 손으로 일한지 20년이 넘어가고, 고된 방앗간 일에 3년 쓸 의수가 1년 채 가질 못했다. 당장이라도 문을 닫고 싶었지만,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부지런히 문을 열었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벌써 40년. 지금은 자식 삼 형제에게 덤덤하게 “너희들은 손도 있고 발도 있으니 더 열심히 살아야한다”라고 말한다.
정숙 씨의 또 다른 호칭은 ‘금손’. 고생한 정숙 씨를 위해 아들 삼 형제가 붙여준 별명이다. 하지만, 정숙 씨에게 ‘금손’은 엄마다. 국수장사, 곡물장사 등 가릴 것 없이 해가며 정숙 씨 6남매를 키워낸 엄마의 희생이 어떤 건지, 함께 고생한 딸은 누구보다 잘 안다.
부지런한 엄마를 닮아 딸도 꿋꿋하게 살아간다. 이젠 편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떡을 만든다. 한 손은 없지만 떡은 두 손일 때보다 더 맛있어졌다.
엄마의 손을 잡는 게 힘들었다.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찢어졌다. 잃어버린 왼손보다 남겨진 여윈 손이 더 아프다. 오랜만에 엄마의 손을 잡아 본다. 굳은살이 켜켜이 박히고 까맣게 쑥 때가 끼어 볼품없지만 딸 눈에는 세상 누구보다 예쁜 우리 엄마 손이다.
[사진=KBS 제공]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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