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박제가, 아담 스미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18세기의 인물이란 점입니다. 정약용과 박제가 등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내 놓은 개혁론은 이론에 불과했지만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서양의 근대를 갈무리하면서 경제학의 기틀을 마련했지요. 18세기 조선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면서 정약용, 박제가의 개혁론이 왜 탁상공론에 머물렀는지를 알아볼까요?”
지난 22일 영등포평생학습관 시청각실에서 열린 고인돌 강좌 ‘조선왕조 실록으로 보는 나라 살림살이’의 강의를 맡은 노혜경(사진) 덕성여대 연구교수는 조선시대의 경제개혁론을 당시 서양의 시대적 상황과 비교하면서 설명하는 형식으로 강의를 이끌어나갔다.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과 본지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운영하고 KT가 후원하는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고전인문 아카데미로 올해 3회째다.
‘경제개혁론“정약용, 박제가, 아담 스미스’란 주제로 열린 이날 강의에서 노 교수는 18세기 유럽과 조선의 시대적 상황 비교부터 시작했다. “증기기관의 발명 등 산업기술의 발전으로 생산능력이 획기적으로 증대되었고, 제국주의가 본격화되었으며, 국부론이 등장한 시기가 18세기 유럽이었다면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국토와 민심이 피폐해졌지만, 나라 곳간이 거덜나버렸어요. 이로 인해 조정이 상업을 장려하는 계기가 됐어요. 정조 때 단행했던 금난전권해지 등이 대표적인 사례죠. 이에 장사로 돈을 번 평민들이 호적을 사서 양반으로 신분을 세탁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벌어졌죠. 나중엔 과거급제 증서인 홍패도 거래 대상이었어요. 이로 인해 신분제가 해체되고, 법과 규칙이 통하지 않는 상황으로 치닫게 됐어요.”
서양은 GNP가 증대하고 국방력을 강화하면서 개혁을 차근차근 실현하고 있었던 반면 조선은 병인양요가 발발한 시점에서도 증기기관에 대한 몰지각으로 연기를 내뿜으면서 출몰하는 서양배(황당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태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노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정약용과 박제가의 개혁론에 대한 설명으로 강의를 이어나갔다. “정약용은 이상적인 농본사회의 실현을 주장했어요. 그러나 중국의 고대국가였던 주나라 시대를 벤치마킹했다는 데 문제가 있어요. 집단농장으로 부의 분배와 생산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자고 주장했던 여전제는 양반을 제외시키는 등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경쟁과 욕망추구라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어요. 결국 구상에만 그쳤던 것이지요.” 혁신적인 주장을 펼쳤던 박제가의 개혁론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박제가는 당시 가장 혁신적인 실학자였어요. 정약용과 달리 중국을 여러 번 오가면서 신문물에 깨인 인물이었던 그는 시장을 육성하고 해상통상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또 제품표준화와 상인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개방주의자였던 그는 인간의 욕망을 개방하고 국가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러나 당시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폄훼하던 조선의 양반들은 박제가를 당시 중국추종자를 칭하던 ‘당벽(唐癖)’ ‘당괴(唐魁)’라며 무시해버렸죠.”
노 교수의 강의는 정약용, 박제가 등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개별적 이해에 그쳤던 조각 역사 지식을 서양과의 비교와 조선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통합적인 분석이 가능하도록 도왔다.
노 교수는 “오늘 소개한 정약용과 박제가의 개혁론은 비록 탁상공론에 그쳤지만, 조선의 경제개혁 제도 중 실현된 것도 있다”면서 “조선사회의 근본적인 체제와 미래의 고민이 담겨있었던 대동법, 균역법, 호포제 등이 바로 그것인데, 이에 대해 다음 시간에 자세히 소개할 것”이라면서 강의를 갈무리했다.
한편, 올해 3회째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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