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의 첫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2011년 1월6일 새해 첫 본회의에서 민주당 낸시 펠로시 의장으로부터 의사봉을 넘겨받은 공화당의 존 베이커 의장은 역사에 남을 만한 두 가지 상징적인 이벤트를 벌인다. 그중 하나는 헌법 낭독. 하원 역사 221년 만에 처음으로 의원들이 돌아가며 헌법 전문을 큰 소리로 읽었다. 이 행사를 통해 법안을 발의하는 모든 의원은 헌법의 어느 조항에 의거했다는 문구를 법안에 삽입하기로 했다. 헌법을 수호하고 헌법에 기초해 처신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벤트였다.
또 다른 하나는 의원 사무실 경비 5%를 삭감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이다. 재정지출 축소를 위해 의회가 솔선수범해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취지였다. 이를 통한 절감되는 예산은 연간 3,520만달러(약 415억원)에 달했다. 의회가 앞장서서 자체 경비를 삭감하니 정부도 예산증액을 요청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부가 지출예산을 증액하면 다른 항목에서 증액요청분보다 더 깎을 수 있는 토대도 그때 만들어졌다. 이런 이벤트에 민주당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었지만 헌법 정신을 수호하고 재정난을 극복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대의에 반발할 명분이 마땅치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도 신년 라디오 연설을 통해 “공화당은 국가발전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며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이를 추진하려는 어느 당의 누구와도 기꺼이 협력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로 재편된 우리 20대 국회도 지난달 30일 개원했다. 7일에는 첫 본회의가 예정돼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뽑아야 한다. 여야는 그때까지 어느 당에서 의장을 배출할지, 혹은 자유투표로 결정할지 합의해야 하고 의장을 뽑기 위한 의장, 즉 임시의장도 필요하다. 그런데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1987년 헌법개정 이후 이 시한을 넘기지 않은 적이 없다. ‘지각 국회’라는 용어도 그래서 생겼다.
원 구성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개원하자마자 대치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시각차도 크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활성화법을, 야당은 경제민주화법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로 섞어 합의점을 찾으려 하기보다 힐난하는 게 먼저다.
같은 의회인데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여소야대의 미국은 의회개혁부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서로 대치되는 정책으로 시작부터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우리 국회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당장 본회의 첫날부터 의원들이 헌법을 돌아가며 큰 소리로 읽고 의원 사무실 경비를 삭감하는 것과 같은 감동적인 이벤트를 마련하기 어렵더라도 이제라도 내부개혁 논의를 시작했으면 한다. 그래야 여소야대가 되니 국회가 달라졌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나 싶다.
내부개혁 논의는 특권 내려놓기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기업은 물론 공무원 조직에까지 일반화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본회의와 상임위 회의 등에 참석하든 말든 관계없이 똑같이 세비를 주고 의원이 행정부에 입각해 의정활동이 불가능한데도 보좌진은 그대로 직을 유지하며 급여를 받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4년 임기 내 처리해야 할 중장기 과제는 국회의원 수 감축이다.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데 굳이 억대연봉의 의원직을 300개나 유지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지금도 선진국보다 많다. 국회의원 한 명당 일본은 26만명, 미국 하원은 70만명을 대표하는데 우리나라는 한 명이 16만2,000명을 대표한다. 여소야대를 내세우고 싶다면 이런 개혁쯤은 보여줘야 국민들도 자랑스러워하지 않겠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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