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 꽤 멋진 취미생활이지만 취미나 레저로 선택하기에는 실제로 그리 만만치 않다. ‘오토바이’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가장 큰 이유지만 여기에는 한국의 도로나 자연환경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제약요건이다. 이따금 출퇴근을 위해 바이크를 몰고 도로에 나서면 꽉 막힌 도로에서 서다 가다를 반복하다 지치기 일쑤다. 게다가 바이크는 승용차와 달리 대부분 수동 변속이다. 복잡한 도로에서 수시로 클러치 조작을 반복하다 보면 이만저만한 스트레스가 아니다.
날씨는 또 어떤가. 겨울이면 바이크는 온전히 지하주차장에서 커버를 뒤집어 쓴 채 오매불망 봄을 기다리는 신세다. 날이 풀려서 라이딩을 즐길만 하다 싶으면 어느새 30도를 훌쩍 넘는 여름이 기다리고 있다. 그냥 길에 서 있어도 더운 판에 헬멧 뒤집어쓰고 엔진과 머플러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노라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바퀴의 지름이 보통의 오토바이보다 작고 소형의 기관(50∼600㏄)을 좌석 아래에 장착하고 있다. 보통의 복장으로 걸터앉아 운전할 수 있고, 여성이 타기에도 편하다. 그러나 장거리의 고속 주행용으로는 적합하지 않고, 사용범위도 주로 시가지에서의 통근·통학·배달 및 근교에서의 가벼운 스포츠에 한정된다. 고성능보다도 경쾌함과 저가격에 특징이 있다.’
두산백과가 정의하고 있는 이 오토바이. 바로 ‘스쿠터’다. 이 정의 대로라면 스쿠터는 도심 운행용으로 딱이다. 반면 그만큼 용도가 제한적이다.그러고 보니 바로 지난주 유주희 기자가 깜찍한 스쿠터를 소개하기도 했다.
과연 스쿠터는 도심에서만 뽈뽈 거리며 타는 놈일까? 편견을 깨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주에 이어 오늘의 시승기 역시 주인공은 바로 ‘스쿠터’다. 그런데 시승 코스가 만만찮다. 기자가 사는 광명시에서 국토를 가로질러 속초로 갔다 되돌아 오는 당일 왕복 코스다(유주희 기자와는 코스의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편도도 버거운데 스쿠터로 당일치기 속초 왕복이라니…. 문득 떠오르는 첫 반응은 ‘무슨 그런 고생을…’일 것이다.
하지만 스쿠터라고 무조건 아담하고 깜찍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자. 이제 본격적으로 소개할 스즈키의 ‘버그만 650 Executive(이하 버그만 650)’이라면 이같은 편견을 충분히 뒤집는 스쿠터다.
물론 버그만 650의 외모는 스쿠터다. 하지만 ‘빅 스쿠터’다. 배기량이 633㏄며, 무게 277㎏, 길이 2,265㎜로 웬만한 투어러 못지 않은 중량급이다. 같은 회사의 125㏄짜리 소형 스쿠터가 무게 100㎏ 안팎에 길이 1,770㎜인 것과 비교하면 대충 짐작이 될 것 같다.
그래도 스쿠터 맞다. 무단자동변속인 CVT 시스템을 적용해 클러치 조작의 번거로움 없이 그냥 넉넉한 발판 위에 발을 올려놓고 달리면 된다.
하지만 그냥 밋밋한 스쿠터는 결코 아니다. 우선 변속 시스템부터 보자. 무단변속시스템은 기본적인 드라이브(D) 모드 외에 파워 모드를 지원한다. 이와함께 운전자가 직접 변속 시점을 제어하는 6단 ‘매뉴얼(M)’ 모드도 갖췄다.
다른 편의장비도 풍부하다. 우선 추운 날씨에 대응하기 위한 보온 시스템이다. 열선 그립 히터는 5단으로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여기에 시트에도 히터가 내장돼 운전석과 동승자 시트를 선택적으로 덥힐 수 있다. 심지어 일반 차량처럼 버튼 조작만으로 사이드 미러를 접었다 펼 수 있다. 쓸데없이 그런 기능까지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좁은 공간을 통과할 때 이 기능은 더없이 유용하다. 전동식 윈드스크린도 빼놓을 수 없는 편의장비다. 우측 핸들에 있는 스위치로 아래 위로 95㎜까지 조절 가능한 윈드 스크린을 장착하고 있다.
버그만650의 수납공간도 동급의 경쟁 모델 중에서 최대 용량이다. 과장 좀 보태자면 뭐든 싣고 탈 수 있을 정도다. 시트 아래 수납공간에는 풀페이스 헬멧 두개를 충분히 넣고도 여유가 있을 만큼 넓다. 운전석 전면 패널에도 다양한 수납공간을 갖추고 있다. 12V 전원소켓도 있어서 장거리 여행시 휴대폰 충전 걱정도 없다.
다양한 편의장비들을 설명하느라 글이 길어졌다. 이제 본격적인 시승기.
지난 주말 아침 부지런히 당일치기 속초 왕복 투어링을 나섰다. 광명에서 서울을 벗어나 동쪽으로 향하려면 어쩔 수 없이 남부순환로를 따라 서울을 가로질러야 한다. 하지만 버그만 650은 만만치 않은 무게와 덩치에도 불구하고 스쿠터의 장점을 십분 발휘한다. 클러치 조작으로부터의 해방! 755㎜의 낮은 시트고도 도심 주행의 피로 감소를 돕는다.
주말 오전인 탓에 도심을 벗어나도 서울-양평 구간이 다소 혼잡했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차량 통행이 확 줄어든 채 쭉 뻗은 국도가 여유롭게 펼쳐진다. 시원하게 달리고 싶다는 충동으로 스로틀을 감는 순간, 혹시나 했던 불안감은 사라진다. 드라이브 모드 상태에서도 부드럽게 계기판의 속도계가 올라간다. 엔진이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한데다 CVT 특성 때문에 변속 충격은 제로. 여기에 차체의 무게 때문에 고속에서의 불안정함도 없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윈드스크린이다. 윈드스크린 높이를 최대로 높이자 상체는 물론 얼굴에도 주행풍이 닿지 않는다. 헬멧 쉴드를 오픈한 채 달려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라이딩 과정에서 피로도를 높이는 원인인 변속, 바람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이다. 여기에 주행중 다리는 발판 위에서 사실상 자유자재로 쉴 수 있으니 이보다 몸이 편안할 수 있을까.
이따금 만나는 오르막에서는 치고 나가는 힘이 다소 부족했지만 이는 파워모드 스위치를 눌러주는 것만으로 해결됐다. 오버 리터급의 고(高)배기량 바이크에는 못 미치지만 파워 모드에서는 웬만한 오르막에서도 거침없이 달려나간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설악산의 풍경을 감상한후 이번엔 매뉴얼모드로 전환한다. 급한 내리막임에도 불구하고 2·3단은 물론 4단 기어 상태에서도 엔진브레이크가 확실하게 무거운 차체에 제동을 걸어준다.
아직 철 이른 바닷가에서 시원한 커피 한잔으로 휴식을 취한 후 오른 귀경길 역시 버그만 650과 함께 했기에 더없이 편안했다. 왕복 400㎞가 훌쩍 넘는 장기리 여행 내내 버그만 650은 바이크를 탄다기 보다는 지붕을 활짝 연 컨버터블을 타고 여행하는 듯 여유롭게 평온했다.
물론 스쿠터인 버그만 650에서 아메리칸 바이크와 같은 감성을 기대하긴 힘들다. 고속주행에 특화된 스포츠 바이크의 짜릿함이 덜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주말 레저용에 국한하지 않고 평소에도 출퇴근 등 생활의 일부처럼 이용하며 요긴하게 내 바이크를 부려 먹고 싶다면 버그만 650은 훌륭한 선택이다. 특히 다양한 편의장비까지 더해져 경쟁 모델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만족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두환기자 d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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