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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없는 취업난 '독존(獨存)청년'이 늘어난다

[기획] 탈출구 없는 취업난, ‘독존청년‘의 아우성

<상>기댈 곳 없는 '독존청년' 세상을 등지다

취업 스트레스로 '자존감 상처' 젊은이→대인관계 기피 악순환

청년실업률 역대 최악인 11.3%. ‘바늘구멍’만큼 좁아진 취업문 때문에 청년들이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 분노와 좌절은 시간이 지나면서 절망으로, 포기와 체념으로 뒤바뀐다. 지난주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비극’으로 불리며 전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했던 ‘곡성 공무원 사망 사건’도 그 시발점은 취업난에 세상을 등진 한 공시생의 좌절과 포기였다.





젊은 청춘들은 최선을 다해 절규의 몸짓을 보내고 있지만 기성세대는 애써 못 본 체, 아니 차가운 외면으로 일관한다. 청년의 호소에 등 돌린 사회는 더 이상 그들에게 관심의 대상도, 기대할 의지처도 아니다. 단단한 울타리를 치고 사회와 철저하게 유리되는 이른바 ‘독존(獨存)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다.

올해로 5년차 ‘장기 취업준비생’인 김도진(34)씨의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는 10개 남짓. 여자친구, 20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을 제외하면 가족이 전부다. 대학 졸업자인 김씨는 “5년 동안 100곳이 넘는 기업에 지원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며 “계속된 낙방으로 자존감이 떨어지다 보니 가족과 여자친구, 친구 한 명을 빼고 아무와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는 시나브로 독존청년의 울타리를 쌓았다. 친구들의 연락처는 스팸번호가 된 지 오래고 그나마 친척들의 연락은 거부 버튼으로 일관하기 일쑤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그는 완전한 ‘자발적 외톨이’로 거듭났다. 김씨는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며 웃고 떠드는 것이 인생에서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내 인생에서 그런 것을 지워버리고 나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움츠러든 심리 게임·음주·성형에 빠져들기 일쑤

취업관문 통과해도 직장생활 적응 못한 채 겉돌기도

부모들 자녀 과잉보호 속 ‘캥거루족’ 양산까지 한몫



성균관대 카운슬러센터에서 학생들의 정신 상담을 맡고 있는 이동훈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 내 정신과에서 처방을 받은 약을 먹거나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고 있는 학생은 전체의 15~20%에 이른다”고 전했다. 대학생 5명 중 1명꼴로 극단적인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취업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인 문제를 호소하는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대인관계에 대한 불안과 기피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대인관계를 극단적으로 기피하는 독존청년들의 문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렇게 심리적인 붕괴를 맛본 독존청년들은 게임·음주·성형 등 다양한 방식의 중독 행동에 빠질 가능성까지 높아진다. 지난 201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대학생의 취업 스트레스와 중독 행동의 관계’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14개 대학의 3~4학년 446명 중 63.5%가 고위험음주군(한 번의 술자리에서 7잔 이상, 여성은 5잔 이상을 주 2회 이상)으로 나타났다. 박민석(27)씨의 사례가 그렇다. 수년째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박씨의 일과는 흡사 ‘프로게이머’에 가깝다. 새벽4시가 넘어 잠이 들고 오후1시가 다 돼서야 일어난다. 눈을 뜨자마자 박씨는 어김없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자연스럽게 평소에 하던 게임을 켜고 어떠한 미동도 없이 게임을 즐긴다. 박씨는 “처음부터 이렇게 게임에 몰두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다”며 “지금은 힘든 수험 생활을 잊을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가 바로 게임”이라고 말했다. 하루를 지켜본 박씨의 일상 중 바깥 활동은 없었다. 그나마 밖에 나가는 일이라고는 군것질거리를 사러 동네 편의점에 가는 일뿐이다. 그는 “게임 속에 가상의 친구들이 있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데 굳이 바깥에서 친구들을 만나 교류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며 “사람들을 만나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내 캐릭터와 계정을 키우는 일이나 내 공부에 더 몰두하는 게 낫다”고 자위한다.



청년들의 폐쇄성은 어린 시절부터 강요된 경쟁 구도 속에 잇따른 실패를 맛보면서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흠집이 나면서 빚어진 현상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숱한 실패 경험에 따른 자존감의 붕괴가 대한민국에 수많은 독존청년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 10번째 성형수술을 마친 김지현(24·가명)씨. 처음 성형 수술을 결심한 때는 150여번째 입사지원서를 낸 기업의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직후였다. 김씨는 모든 문제가 부족한 자신의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주저 없이 수백만원에 달하는 성형 수술비를 지불하고 수술대에 올랐다. 그렇게 몇 번의 수술을 거쳤지만 김씨는 번번이 자신이 원하는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수술 후 부기가 빠지는 동안 지인들을 볼 수 없었기에 서서히 그나마 있던 인맥도 모두 떨어져 나갔다.

김씨는 자신의 인간관계가 무너진 이유를 또다시 외모에서 찾았다. 외모가 더 나아질 수 있다면 떨어져 나간 사람들도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김씨는 다시 수술대 위에 올랐다. 3년 동안 김씨가 성형외과에 들인 비용만도 2,000만원이 넘는다. 김씨는 “대인관계를 불편하게 여기는 인식이 성형 후에 오히려 심해졌다”며 “나아졌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에 억지로 나가면 식은땀이 나고 불안해 그 자리에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심각한 취업난에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캥거루족’들이 늘어나는 추세 역시 독존청년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베이비붐 세대 부모들이 경제적 풍요 속에 자녀를 과잉보호하면서 자립성이 결여된 캥거루족을 양산했고 이들이 주체적인 삶을 꾸리지 못하면서 결국 독존청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30년 동안 김민성(30)씨는 경제적인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퇴직하게 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왔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김씨는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취업 전선에서의 실패 끝에 김씨의 선택은 독존청년이었다. 철저히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김씨는 “부모의 지원이 끊기고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며 “위기 상황이 왔을 때 나는 그것을 극복할 방법이 없었고 결국 나 자신만 바라보며 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사람을 만날 때 살갑게 대했는데 이제는 표정관리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도 했다.

취업에 대한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로 좌절을 겪으면서 젊은이들이 세상과 단절하고 스스로를 가두는 ‘독존청년’을 자청하고 있다. /이미지투데이


바늘구멍보다 더 좁다는 취업 관문을 통과했다고 해서 독존청년의 폐쇄성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다. 상당수 ‘2030’ 젊은 직장인들은 직장 생활에서도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며 스스로를 가두려는 병리적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4년간의 취업준비생 생활을 거치고 1년 전 모 대기업 취업에 성공한 김인성(31·가명)씨. 2년차 새내기 직장인인 김씨는 회식이 죽기보다 싫다고 말한다. ‘지나친 음주’ ‘음주로 인한 피곤함’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 섞여 온갖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업직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김씨가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는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다. 김씨는 “영업을 하면서 외부 사람과의 만남도 힘든데 사내 회식까지 강제하는 것은 너무 하는 거 아니냐”며 “하루종일 사람들 속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는데 최근에는 탈모가 심하게 올 정도로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사회초년생과 취업준비생 등을 상대로 상담을 진행해온 문은미 동신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잦은 실패로 자기 효능감이 사라진 청년들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에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경향이 짙고 결과적으로 대인관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서 타인의 존재 자체를 무시해버리는 독존청년이 되는 것”이라며 “단순히 이 사회를 등지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비사회적 행태로 표출되면 또 다른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종호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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