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9년6월10일 오후 7시55분, 영국 런던 외곽 햄블던록. 어둠이 깔리던 템즈강에서 날렵한 보트 두 척이 스타트를 끊었다.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의 조정 경기가 처음 열린 순간이다. 오후 6시 시작 예정이던 시합이 지연되는 와중에도 구경꾼들은 계속 몰려들었다. 관중의 응원 속에 펼쳐진 첫 경기의 승자는 옥스퍼드. 3.62㎞ 구간을 14분 30 초에 달렸다. 평균 시속 약 15.15㎞.*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간 첫 조정 경기의 관중은 2만여명. 근대적 교통 수단이 전혀 없던 시절치고는 기록적인 인파였다. 오늘날에도 매년 봄마다 약 27만명의 관중이 강변에 모인다. 경기 구간이 길어졌다고는 하나 불과 20여분의 승부를 보려고 비행기를 타고 오는 외국인 관중도 적지 않다. TV시청 인구까지 합치면 2억 세계인이 경기를 관전한다. 지구촌의 야외 아마추어 스포츠 가운데 단일 경기로 가장 많은 수가 지켜보는 경기가 바로 187년전 오늘 시작된 옥스퍼드-케임브리지의 조정 경기다.
사람들은 왜 이 경기에 열광할까. 바다를 제패하며 대제국을 이룬 나라로 수상 스포츠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다른 흥행 요인도 두 가지 더 있다. 첫째 당시에는 세계 랭킹 1,2위를 달린다고 자부하던 명문대학의 수재들이 근육의 힘과 단결력을 겨루는 시합만큼 좋은 교육 현장도 없었다. 꼬마들의 손을 잡고 찾아오는 부모들이 여전히 많다. 두 번째는 역대 전적이 엎치락뒤치락했기 때문.
첫해 경기에서 패한 케임브리지는 7년 후에 벌어진 두 번째 경기에서 이기며 1 대 1의 스코어를 만들었다. 이후 올해 대회까지 통산전적이 같았을 때는 단 두 번. 1863년(10 대 10), 1929년(40 대 40)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한 대학이 다른 대학을 앞섰다. 역대 전적은 82 대 79로 케임브리지의 우세.** 무승부도 두 척이 동시에 뱃머리를 목표지점에 댄 1877년 단 한 번 밖에 없었다.
통산전적의 전체 흐름은 케임브리지의 우세. 세 번째 대회부터 1862년까지 앞서 나갔다. 1863년부터 1928년까지는 옥스퍼드가 케임브리지를 눌렀다. 동률을 기록한 1929년 바로 뒤인 1930년 대회를 이긴 케임브리즈의 우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시기는 1992년. 케임브리지와의 격차가 68대52로 벌어졌던 1975년 이후 17차례 대결에서 옥스퍼드가 16승을 거두며 한 게임 차로 좁혀지자 영국인들은 1년 내내 경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내기 돈의 추정치가 수출 규모와 맞먹었다고.
국민적 스포츠로 자리 잡으며 이 경기는 고유명사로도 자리 잡았다. ‘더 보트 레이스(the Boat Race).’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두 대학이 확고하게 지킨 원칙이 있다. 아무리 조정 실력이 뛰어나도 학력이 떨어지는 신입생은 안 뽑았다. 대회를 앞두고 6개월간 일주일에 6일씩 훈련시키면서도 학과 공부와 시험에서 특혜도 주지 않았다. 공부 잘하는 우등생으로 입학해 처음 접한 조정에서 두각을 발휘하며 올림픽 금메달을 딴 학생에게도 두 대학은 엄격한 학사기준을 지켰다.
열심히 공부하며 경쟁하는 상징인 ‘더 보트 레이스’는 각국으로 펴졌다. 미국 대학 중 하바드와 예일, 육사와 해사, 일본 와세다와 게이오 연례 대항전의 원형이 바로 보트 레이스다. 우리나라에서는 관심도가 예전만 못한 고연전(연고전)도 마찬가지다. 대학간 대항전의 원조 격인 더 보트 레이스의 승자와 패자는 서로 아끼고 격려하는 전통으로도 유명하다. 첫해의 경기도 명문 퍼블릭 스쿨인 해로우의 동기동창생들이 각각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 진학한 뒤에 자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승패를 겨루지만 승자와 패자가 함께 하는 아름다운 경쟁’은 캠퍼스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국내 경쟁이 없었다면 한국의 백색가전이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학업도 비슷하다. 더 보트 레이스는 경쟁자끼리 밀고 끌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세상사의 원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학생들과 기업들도 정정당당한 경쟁 속에서 내실이 더욱 다져지고 마침내 승리하기를 빈다.
/논설위웜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역대 최고 속도 기록은 1998년 케임브리지대학 조정팀이 세운 시속 24.9㎞. 선체 저항을 줄이려 첨단 소재를 동원한 결과다.
* 여학생간 레이스 전적도 케임브리지가 41 대 30으로 앞서고 있다. 신입직원을 뽑는 기업들은 두 대학 조정선수 출신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단결력과 리더십이 강한데다 체력에서 발군이기 때문이다. 팔과 어깨는 물론 허리와 다리를 골고루 써야 하는 조정은 가장 균형 잡히고 탄력 있는 근육을 만들어주는 운동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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