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는 운동장 바닥 모래, 스탠드 뒤편에 네모 반듯하게 세워진 건물, 복도를 따라 일렬로 줄 세워진 교실들…’ 세대는 다르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학교 건물의 모습은 같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학교 건물은 거의 변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경기 남양주시 도농동에 위치한 동화고 ‘삼각학교’는 이런 학교 건축의 양식을 파괴한 작품이다. 삼각형 모양으로 건립돼 삼각학교라는 명칭이 붙은 이 작품은 시대의 교육적 가치를 담는 학교 건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 과거에 갇혀버린 학교건축
네모 반듯한 운동장·건물…일자로 뻗은 복도
19세기 교실서 21세기 아이 가르치는 학교
국내 교육에 대해 흔히들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표현한다. 21세기를 사는 아이들이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은 정작 19세기에 갇혀 있는 셈이다.
사각 운동장과 일자형 복도 등 일반 학교의 모습은 지난 1962년에 만들어진 표준설계도에서 확립된 형태다. 1990년대 학교시설 현대화 사업이 시작되면서 표준설계도 사용 의무화가 폐지됐지만 학교 건물의 표준화된 모습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다.
삼각학교의 설계를 맡은 유소래 네임리스건축 소장은 “학교 건물을 만드는 시스템이 고정돼 있는데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학교 건축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 몇 십 년간 같은 학교 건물이 반복적으로 생산돼왔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수많은 학교가 만들어지면서 양적 팽창은 이뤄졌지만 역사성도, 지역성도 사라진 건축물로 남게 됐다. 동화중·고교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가운데 운동장을 둘러싼 채 10~20년의 시차를 두고 건물들이 하나씩 세워졌지만 겉모습과 재료만 약간 달라졌을 뿐 일자형 복도 등 틀에 박힌 속내는 그대로다.
이에 대해 박정현 마티출판사 편집장은 건축리포트 와이드(44호)에 게재한 ‘시선의 극장’이라는 비평을 통해 “급속히 인구가 팽창한 근현대사의 흔적이 학교의 무질서한 확장에 고스란히 묻어난다”고 표현했다.
● 시장바닥 같은 학교를 꿈꾼다
화장실 갈때만 이용하던 복도
수다 떨며 공부하는 아이들 거실로
삼각학교를 탄생시킨 네임리스건축의 나은중·유소래 건축 듀오는 ‘시장바닥’과 같은 학교를 꿈꾸며 설계를 진행했다. 삼각학교는 북쪽으로는 운동장, 동·서쪽으로 각각 뒷산, 중학교 건물과 맞닿은 대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인 직사각형 건물로 지을 경우 운동장과 중학교 사이를 전부 가로막게 되는 문제가 있어 삼각형 건물이 탄생하게 됐다. 삼각 배치는 기존 일자형 복도에서 벗어나 가운데 중앙정원을 중심으로 360도 순환하는 복도를 만들어냈다. 설계자는 복도 폭을 2.4~5.5m로 다양하게 배치해 복도가 단순히 이동통로가 아닌 ‘거실’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나은중 네임리스건축 대표는 “복도는 학교에서 유일한 공용공간인데도 기능적으로 왔다 갔다만 할 수 있도록 비좁게 형성돼 있다”며 “복도가 학생들에게 문화적 장소이자 여러 부대낌을 유발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건물 바깥의 삼각형과 가운데 중앙정원의 삼각형을 약간 비틀어 배치해 2층과 3층 사이에 수직적인 틈을 만들었다. 이 틈으로 인해 2·3층 간 수직적으로 시야가 열리고 새로운 소통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도 바로 복도다. 한상현 동화고 교감은 “일자형 복도일 때는 화장실에 가기 위한 통로 정도로 이용했지만 요즘은 자율학습 시간에 복도에서 공부하거나 2·3층 간 틈을 통해 서로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등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한다”고 전했다.
● 학교 건축의 미래를 묻다
소통·투명성 모두 담아낸 건물속 중앙공원
천편일률 공간 구성 넘어서는 새 대안 제시
이 외에 투명성은 삼각학교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운동장 쪽 건물 정면은 투명한 유리로 뒤덮여 학생들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내부 중앙정원 3면도 모두 유리로 구성됐다. 나 대표는 “기존 학교들이 시선을 닫고 폐쇄적인 학습공간을 만들었지만 열린 교육을 위해 의도한 결과”라고 밝혔다.
건물 중앙에 자리 잡은 중앙정원은 소통과 투명성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하늘을 향해 뻥 뚫린 이곳에서 학생들은 배드민턴을 치거나 자유롭게 앉아서 대화를 나눈다. 유리로 둘러싸여 해가 뜰 때부터 지는 순간까지 건물 내부로 빛을 고르게 끌어들이는 역할도 한다.
이렇게 지어진 삼각학교는 2014년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을 수상하는 등 짓기 이전부터 완공된 후까지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삼각학교가 큰 관심을 끄는 것은 단순히 삼각형의 외관이 특이해서라기보다는 이 시대의 학교 건축이 어떤 가치를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유 소장은 “국내 학교 건축은 시·구청사 등 다른 공공건물과 비교해봤을 때도 획일적”이라며 “교육열이 상당히 높은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사용하는 공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고 지적했다. 삼각학교 이후 국내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학교 건축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생겨나고 있다. 삼각학교가 학교 건축의 유일한 정답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정답‘들’을 위한 시도는 현재진행형이다. /남양주=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변화의 싹 틔우는 지구촌 학교들
100m 육상트랙이 건물 관통한 英… 투명유리로 학교 뒤덮은 스위스
학교는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 시대의 교육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다양한 건축적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영국 브릭스턴에 위치한 ‘에벌린 그레이스 아카데미’는 학교 건축이 지역 재생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브릭스턴은 영국 내 대표적인 저소득층 거주지역이다. 에벌린 그레이스 아카데미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는 이곳을 낙후된 주변 건물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랜드마크로 만들어 교육 성취율이 낮은 지역 주민들에게 교육이 가져다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대지면적이 영국 평균 학교의 6분의1가량에 불과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00m 육상트랙이 학교 건물을 관통하도록 만드는 등 창의적인 도전도 시도했다. 현재 육상트랙 등은 지역민들을 위한 사회기반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스위스는 몇 십 년 전부터 학교 건축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나라다. 나은중 네임리스건축 대표는 “스위스 취리히 교육청에서 지난 1999년에 새로운 공모 시스템을 만들어 2000년대부터 변화된 학교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취리히의 대표적 공립학교인 로이첸바흐 스쿨과 임 비르히 스쿨은 학교 전체를 투명한 유리로 뒤덮었다는 점에서 폐쇄적인 국내 학교와는 정반대의 교육적 가치를 드러낸다. 6층으로 이뤄진 로이첸바흐 스쿨은 건물 전체가 투명 유리로 둘러싸여 학습공간과 체육활동, 교사들의 연구활동까지 모두 노출된다. 임 비르히 스쿨도 내외부를 유리로 구성했으며 필요에 따라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히 복도 대신 3~4개의 교실을 연결시켜주는 공용공간을 만들어 교육이 교실을 넘어 바깥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도록 했다. /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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