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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에서] 남태평양은 기회의 땅

김성인 주피지대사

재생에너지·해양플랜트 분야

무한한 잠재력 갖춘 미래시장

韓 첨단해양기술 진출해볼 만

김성인 주피지대사




오세아니아의 대국 호주는 그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에 걸쳐 필자가 주재하고 있는 피지를 비롯한 남태평양도서국가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오고 있다. 호주가 이 지역 도서국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른바 ‘불안정성의 호(arc of instability)’라는 표현에 함축돼 있는데 이는 이들 국가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데다 정세도 다소 안정적이지 못하니 대국인 호주가 도우면서 관리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지난 2013년 2월 캔버라 호주 국립대에서 진행된 한 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야 하며 남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목을 받았다. 이 자리에 참석한 석학들은 중국 등 외부국가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와 함께 남태평양 지역의 정세와 도서국가의 위상 변화를 감안할 때 이 지역이 더 이상 불안정한 땅이 아닌 기회의 땅이라는 근본적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이구동성으로 강조했다.

실제로 남태평양 지역 도서국가의 위상 변화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중국·태국·유럽연합(EU) 등 원양수산 대국들이 참치 등 관련 어업협상에서 이들에게 무기력하게 끌려다니고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도 협상 테이블에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세계 전체 수산물의 20%, 특히 최고가 어종인 참치의 60%를 공급하는 이 지역에서 조업을 중단시킨다면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 상상해보니 자원의 무기화가 비단 석유와 같은 광물자원에 국한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단결력 또한 대단하다. 이 지역 14개 도서국은 12월 파리 기후변화총회에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문을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는데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광경이다.

남태평양 지역의 가치는 풍부한 참치 어장과 국제 선거에서의 몰표 행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남태평양 지역은 재생에너지·해양플랜트 등의 분야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갖춘 미래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지역 도서국이 바로 기후변화의 최대 희생양이라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기후재원이 집중되고 있다. 남태평양도서국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오는 203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운 바 있고 국제사회에서도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가 현재의 화력발전구조를 100% 재생에너지 발전구조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수십조원에 달하는 재원뿐 아니라 첨단 신재생에너지 기술도 함께 도입해야 한다. 해수면 상승에 따른 연안관리나 해양엔지니어링 관련 수요도 상당하다. 이미 미국·중국·일본·EU 등은 신기후체제하에서 남태평양 지역을 자국의 주요 성장 동력원의 하나로 인식하고 이 지역의 거대한 신재생에너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최근 중국·인도·인도네시아·EU 등 주요국 정상급 인사들이 연이어 남태평양 지역을 방문하고 미국 국제개발청(USAID), 세계은행(World Bank), 유엔세계식량계획(WFP) 등 다양한 정부기관 및 국제기구 등이 앞다퉈 피지에 태평양지역사무소를 개소하고 있다는 사실이 남태평양 지역의 가치에 대한 재발견을 방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남태평양 지역에 대한 정책은 어떠한가. 현재까지 집행된 우리나라 전체 공적개발원조(ODA) 가운데 남태평양 지역에 배정된 비율은 0.15%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거의 수산협력을 위한 지원이 대부분이다. 거의 ‘무관심의 호(arc of indifference)’ 수준이다. 남태평양 지역은 더 이상 무관심의 호가 아닌 ‘기회의 호(arc of opportunity)’라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앞서 언급한 신기후체제 출범에 따라 우리나라 역시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대비 37%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그중 11.3%는 해외에서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개도국 온실가스 감축사업의 확대는 시급한 과제다. 남태평양 지역은 이와 관련한 최적의 협력파트너다. 우리의 기술 제공을 통해 남태평양 지역과 우리나라가 모두 윈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세계 네 번째로 성공시킨 해수온도차 발전은 이렇다 할 재생에너지원이 없는 일부 도서국가에는 꿈의 기술이다. 우리의 첨단 에너지 저장장치를 통해 도서국들에 지속 가능한 전기를 공급해줄 수도 있다. 우리의 첨단 해양수송 기술을 활용한다면 이 지역 도서국가 간 연결성이 증대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첨단해양기술을 담보로 국제기금을 활용해 우리 기업들의 진출을 모색할 수 있는 곳도 바로 남태평양이다. WB·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적 다자 개발은행의 에너지·온실가스감축 관련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의 진출을 독려하고 아울러 우리 재생에너지 기업이 남태평양 지역에 안정적인 투자를 진행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 중동 지역이 그러했듯 오늘날 남태평양은 우리가 개척해나가야 할 새로운 기회의 땅이기 때문이다.

김성인 주피지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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