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시대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던 외주업체 비정규직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규정된 ‘구의역 9-4 승강장’.
스크린도어 사고로 꽃 같은 목숨을 잃어도 책임 돌리기에 급급한 관리자들에게 온 국민이 분노했다. 컵라면의 국물이라고 떠먹고자 숟가락을 챙겨다니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비루한 현실에 함께 눈물을 흘렸다. 구조적 문제의 해결이 절실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과연 메피아와 하청업체 비정규직 청년의 대립구도로만 이번 사건을 규정지을 수 있는가. 그 출발은 메피아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그 배경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 공기업 선진화와 유진메트로컴
지난 2003년 지하철 승강장에서 실족·투신 등으로 사망 사고 70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 10월에 안전문 설치·관리 업체 유진메트로컴이 설립됐다. 이듬해에는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업에 안전문 광고판의 광고 운영권을 주고 안전문 설치·관리 비용을 내게 하는 민간투자방식 안전문 설치를 지시했다.
서울시는 공고를 내기 불과 5개월 전 설립된 유진메트로컴에 2022년까지 광고권을 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신생회사였던 유진메트로컴은 안전문을 설치·관리한 경험이 전무한 업체였다.
박진형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강북3)은 유진메트로컴이 2006년과 2007년 서울메트로와 맺은 실시협약서와 2008년 서울시 감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법령상 스크린도어 설치·유지·보수 사업 자체가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될 수 없음에도 계약이 성사됐다고 지적했다.
서울메트로는 2003년 12월 건설교통부와 질의회신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도 부적절하게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했다가 서울시 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하철 2호선 12개 역에 대한 스크린도어 설치·유지보수 사업은 ‘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됐으나 유진메트로컴 컨소시엄만 단독 응찰했다.
규정상 경쟁입찰 방식에서 한 업체만 단독 응찰할 경우 재공모를 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메트로는 단독 응찰한 유진메트로컴 컨소시엄과 계약을 맺었다. 덕분에 유진메트로컴은 설립 1년 만에 사업비 규모 420억원 상당의 공공기관 발주계약을 맺었다. 완공 이후 스크린도어 광고가 몰린 유진메트로컴은 이후 9년간 2,559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 박진형 서울시 의원은 “경쟁입찰을 하게 돼 있고 단독응찰은 재공고를 하도록 법령과 서울메트로 내부 지침에 정해져 있음에도 1차에 단독으로 들어온 업체와 계약을 한 것은 의아하다”며 “설치비가 과하게 산정돼 있으며 계약기간 22년에 수익률 9%도 굉장히 비싼 상황에서 1년에 30억원씩 황금알을 낳는 사업에 관심을 보였던 다른 업체들이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또한 지난 2006년 1차 계약을 담당했던 서울메트로 본부장이 1차 사업이 끝난 직후 계약 업체로 이직하는 등 전관예우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 인력의 분사(分社) 통한 경영 효율이 메피아 낳았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인 2008년 서울메트로는 전동차 경정비 업무를 최저입찰제를 적용해 민간에 위탁용역을 맡기는 ‘창의혁신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인력의 20%인 2,000여명의 직원을 대대적으로 감축한 끝에 재무구조 자체는 개선됐다.
다만 구조조정 대상자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이들을 외주 용역업체에 떠넘기는 방식을 택했다. 그 과정에서 안전업무는 전부 외주로 넘어가 민간에 위탁됐다. 서울메트로는 2008년부터 설비(시스템) 유지·보수 부문의 핵심 업무로 볼 수 있는 ▲차량기지 구내 운전 ▲전동차 경정비 ▲모터카 운전 ▲스크린도어(PSD) 운영 등 4가지 업무를 외부 민간업체에 위탁해왔다.
이듬해인 2009년에는 비핵심 업무로 역무, 철도장비, 전동차 정비, 유실물센터 업무를 분류했으며 일부만 ‘외주’로 운영되던 궤도시설물 유지·보수, 건축시설 보수, 신호설비 및 전원장치·통신설비·지상전력 공급로 보수, 청원경찰 업무분야로 외주 범위를 확대했다.
이처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공기업 10% 인력 감축 프로젝트’는 본사의 인력 숫자를 줄이는 게 골자였다. 당시 이 같은 분사안에 대해 서울지하철노조는 “안전운행과 공공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사회적 공헌을 높여나가야 할 공기업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며 “한편에선 퇴물 관료들이 시민재산인 지하철을 사익 추구의 장으로 삼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인력 중심의 분사(分社)는 속도를 냈으며 시민의 안전은 싼값에 외주로 넘기는 ‘효율적인’ 하청 구조가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예로 이번 구의역 사고로 촉발된 메피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은성PSD 분사는 서울메트로와 전적자에게 막대한 금전적 이익을 안기는 ‘효율적인’ 구조로 설계됐다.
서울메트로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직영화하면 연간 인건비가 72억원 소요될 것으로 계산했다. 반면, 민간에 맡기면 9년간 인건비가 연평균 48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추산했다.
전적자는 정년이 당초 58세에서 61세로 3년이나 늘어나 전혀 손해를 보지 않았다. 56세 직원이 받는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서울메트로에서 58세에 은퇴하기까지 216.7을 받지만, 은성PSD로 적을 옮기면 61세까지 총 402.1을 받게 설계돼 오히려 2배나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외주업체는 원청업체인 서울메트로로부터 일감을 지속적으로 수주하는 대가로 인건비와 노사관리 부담을 떠맡았다. 바통을 넘겨받은 이들은 비정규직과 청년층의 인건비를 줄이는 것으로 ‘인건비 부담’을 해결했던 것이다.
임기 5년간 ‘메피아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고 후 안전업무의 외주화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렇듯 사태가 심각해지자 서울메트로는 뒤늦게 오는 8월 자회사를 설립해 스크린도어 정비 업무를 맡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이 또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라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의 1차적인 원인으로 ‘인력 부족’이 지적되고 있음에도 인원 충원 계획은 없기 때문이다. 자회사를 설립해도 125명이 97개 역사의 7,700여개의 스크린도어를 정비해야 하는 현재의 상황은 그래도 유지되며, 서울메트로 관리 24개 역에 대해서는 또 다른 외주 용역업체가 2028년까지 맡기로 계약이 돼 있는 상황이다.
이에 서울지하철노조 측은 “무리한 인력감축에 급급하다 보니 온갖 편법과 탈법이 판을 쳤다. 고위 관료들의 이권 나눠먹기까지 가세한 결과 기이한 인력 구조로 얼룩진 외주업체가 탄생한 것”라며 “외주업체와 관련된 비리는 철저히 수사하고 문책해달라”고 호소했다.
/김인경인턴기자 izzy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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