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주최로 14일(현지시간) 윈난성에서 열린 ‘중국·아세안 외교장관 특별회의’ 직후 아세안 회원국 대표들은 중국에 대한 우려를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가 몇 시간 후 철회했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당초 공동성명에서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신뢰와 확신을 무너뜨리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최근의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이는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보·안정을 약화시킬 개연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또 “우리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포함해 전 세계가 인지하고 있는 국제법 원칙에 따라 남중국해에서의 항행 안전과 자유,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세안은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유지·촉진하는 것은 물론 위협이나 강압이 아닌 법률과 외교적 절차를 거쳐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책무를 지고 있다”는 내용도 담았다.
이러한 내용은 필리핀이 국제해양법을 근거로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신청한 남중국해 분쟁 중재의 결과를 중국이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대한 비판으로 해석된다. 비록 명확히 중국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중국과 이해관계가 얽힌 아세안 회원국들이 남중국해를 두고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상황에 비춰본다면 이례적인 수위였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난 후 아세안 회원국인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수정해야 할 내용이 있다며 갑자기 성명철회를 발표했다. 이후 아세안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않고 개별국가 차원의 성명만 발표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 방침을 바꿨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이와 관련해 외교가와 외신들은 해당 성명에 대한 중국의 반발이 거셌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남중국해에 대한 반중 정서 완화를 위해 중국이 개최한 특별회의에서 해당 성명이 나왔다는 사실이 중국 정부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자 중국과의 교역비중이 높아 경제적 영향권에 있는 말레이시아·라오스 등 친중 국가들이 성명 수정을 강하게 요구, 이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중국과 싱가포르 간 합동 기자회견이 취소되는 보기 드문 광경까지 연출돼 아세안 회원국들이 심각한 내홍을 겪었음을 보여줬다.
비비언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은 이번 특별회의 중재국으로 아세안 10개국을 대표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으나 항공편을 변경할 수 없다는 석연찮은 이유를 들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싱가포르 외교부는 이날 독자성명을 발표해 “발라크리슈난 장관은 아세안 외교장관들이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고 언급했다”고 밝혔다./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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