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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투표 D-3 런던을 가다]"지금 영국은 분열 그 자체 투표 후에도 UK 못 될 것"

의원피살 직후 여론조사서 '잔류 지지율' 45%로 다시 역전

"혐오·극단주의 거부" 잔류파 늘었지만…부동층 여전히 10%대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앞에 마련된 조 콕스 하원의원 추모 장소에서 시민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콕스 의원 피살을 계기로 영국에서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반대 지지율이 다시 찬성 지지율을 웃도는 등 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 런던=이경운기자




“지금 영국은 ‘분열’ 그 자체입니다.”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앞에서 만난 마이크 테일러(33·회사원)씨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로 영국이 분열하고 있다는 주변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그는 막상 조 콕스 의원이 극단주의자에게 피살당한 소식을 듣고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현재 집권당인 보수당도, 제1야당인 노동당도 특별히 지지하지 않는다는 테일러씨는 브렉시트 정세에 대해 “혼란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보수당 수장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노동당 대표인 제러미 코빈 당수가 힘을 합쳐 유럽연합(EU)에 남자고 주장하는데 이 두 세력을 국회 내 1·2당으로 만들어준 국민의 절반이 여론조사에서 EU 탈퇴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분열과 혼란은 영국의 모든 국민들이 직면한 문제로 보였다.

이날 런던 시내는 지난 16일 피살당한 콕스 의원에 대한 추모 분위기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둔 마지막 주말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조용했다. 브렉시트 찬반 세력 모두 이날까지 캠페인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시내 곳곳에서 벌어졌던 찬반 시위는 거의 자취를 감춘 가운데 곳곳에 마련된 콕스 의원 추모 장소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침묵 가운데서도 브렉시트 찬반 진영의 논쟁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이날 선데이텔레그래프 기고를 통해 “EU 탈퇴가 경기침체를 촉발할 수 있다”고 거듭 주장하며 “확신이 없다면 탈퇴의 위험을 무릅쓰지 말고 모른다면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반면 브렉시트 찬성파인 마이클 고브 법무부 장관은 같은 신문에 반대 기고를 통해 “경기침체로 고통받느니 영국은 EU 밖에서 번영할 것”이라며 “희망에 투표하라”고 주장했다.

여론 역시 크게 요동쳤다. 영국 여론조사 업체 서베이션이 콕스 의원 피살 직후인 17~18일 성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45%로 EU 탈퇴(42%)를 앞섰다. 이는 이 업체가 불과 사흘 전인 15일 여론조사에서 브렉시트 찬성이 3%포인트 우위를 보인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콕스 의원 피살 사건이 EU 탈퇴로 기울던 표심을 잔류 쪽으로 크게 움직인 셈이다.



18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앞에 마련된 조 콕스 의원 추모 장소에서 만난 릴리 콜린스씨는 자신에 대해 “지금까지 브렉시트에 관해 부동층”이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테러가 내 결정을 확고하게 했다”며 “극단주의가 EU 탈퇴와 결부돼 있다면 이를 거부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콕스 의원의 남편이 아내에 바친 추도사에서 “증오는 신념이나 성취, 종교가 아니다”라며 “그녀를 숨지게 한 증오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밝힌 것을 기자에게 설명했다.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했던 콕스 의원의 사망은 브렉시트 물줄기를 완전히 바꿔놓은 분위기였다. 현지에서 만난 런던 시민들은 콕스 의원 사건이 브렉시트 반대, 즉 영국의 EU 잔류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브렉시트에서 브리메인(영국의 유럽연합 잔류, Bremain)으로 우세가 바뀐 영국 시민들의 인식변화는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지지율 조사에도 반영됐다.



여론조사 업체 서베이션이 18일 콕스 의원 사망 후 처음으로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에서 EU 잔류 지지율이 탈퇴를 앞선 데 이어 유고브 여론조사 역시 이날 44%대43%로 브렉시트 반대가 찬성을 앞질렀다. 유고브의 직전 조사(6월12~13일)에서는 46%대 39%로 브렉시트 찬성이 반대를 7%포인트 차로 우세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또한 18일 영국 내 최대 베팅 업체인 ‘베트페어’도 콕스 의원 사건 이후 영국의 EU 잔류 가능성을 65%로 올렸다.

당장 눈에 보이는 추모 행렬과 달리 영국 국민들이 결국 브렉시트를 선택할 것이라는 의견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자신을 EU 탈퇴파라고 밝힌 한 시민은 이번 사건으로 동정론이 일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극단주의와 EU 탈퇴는 다른 문제”라며 “영국 시민들은 국민투표에서 무엇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느냐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렉시트 찬성파를 이끌고 있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도 선데이익스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이 EU를 지키기까지 이제 4일 남아 있다. 영국이 EU를 탈퇴해 비민주적으로 변한 유럽을 자유로 이끌어야 한다”며 다시 본격적인 브렉시트 찬성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 국민투표의 최대 변수로 꼽히는 부동층의 상당수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템스강 근처에서 만난 30대 여성 에밀리 블런트씨는 “EU를 탈퇴하자는 주장은 극단적으로 들려 지지하지 않는다”면서도 “EU에 남는 것은 영국과 EU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고 국내 여론 분열만 키울 것으로 보여 걱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오는 23일 투표소에 꼭 갈 것이지만 아직 결정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18일 여론조사 업체 오피니엄이 일간 옵서버의 의뢰를 받아 2,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온라인 조사에서 블런트씨와 같이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전체의 10%에 달했다.

이렇게 영국 내 분열과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이를 초래한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비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까지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투표가 다가올수록 캐머런 총리를 중심으로 한 EU 잔류파와 존슨 전 런던시장을 따르는 탈퇴파로 쪼개진 보수당의 당 지지율이 급감했다. 콕스 의원의 추모 행사에서 만난 40대 남성 루크 스미스씨는 “브렉시트 투표에 참여할 생각이지만 이 투표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며 “보수당은 물론 노동당도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였다”고 밝혔다.

특히 캐머런 총리에 대한 영국 시민들의 반감이 거세진 것으로 보였다. 스스로를 보수당 지지자라고 밝힌 한 시민은 캐머런 총리의 리더십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애초 당내의 완벽한 지지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것이 무리한 도박이었다”며 “총리가 원하는 EU 잔류가 성사돼도 그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일각에서는 국민투표 이후에도 분열과 혼란이 영국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지 칼럼니스트인 소피 리지는 “결과에 상관없이 24일 우리는 국민투표로 더욱 분열된 나라가 될 것”이라며 “그때도 영국은 여전히 ‘유나이티드 킹덤(United Kingdom)일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브렉시트 투표 자체에 대한 반대와 왜 국민투표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금융 업계에 종사한다고 밝힌 한 60대 남성은 “브렉시트 찬반 양측이 너무 정치적으로만 접근해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어렵다”며 “이런 상황에서 국민투표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런던=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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