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발전으로 일자리가 갑자기 대량 증발하지는 않겠지만 대신 많은 일자리가 저임금 노동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노동시장 질서의 급변에 대비하기 위해 산업인력의 재교육·재배치 논의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강정수(51·사진) 디지털사회연구소장은 최근 서강대에서 열린 ‘AI시대와 아이들의 삶’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AI시대가 과거 산업혁명처럼 불현듯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독일 비텐대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은 강 소장은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 오프넷 이사로도 활동 중인 정보통신기술(ICT) 및 미디어 비평가다.
그는 과거 기계·자동화가 단순 노동을 대신하는 데 그쳤다면 AI를 비롯한 최근 기술혁신은 중·고급 노동력을 빠르게 대체하며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령 미국 증권시장을 주도하는 고빈도 매매(HFT)를 로봇이 담당하는 거래량이 2009년에는 절반 수준에 그쳤지만 현재는 80%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HFT 로봇거래비중이 10% 안팎에 그칠 것으로 추정되지만 서구와 같은 확산은 시간문제다.
강 소장은 “로봇혁명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기존 일자리 상실속도가 더 빠른 게 문제”라며 “특히 조직 중간자급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AI·로봇혁명으로 저임금 노동자들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컴퓨터의 알고리즘 작동에 필요한 것은 무궁한 데이터인데 현재 이 데이터를 생산하고 업데이트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강 소장은 “가령 구글의 광고가 제대로 효과를 내는지 손으로 클릭하며 테스트하는 것은 ICT 비정규직 노동자”라며 “이들의 저가노동을 AI는 따라 학습하며 데이터를 축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시간당 2달러 정도를 받는 이 같은 ‘데이터 문지기(data janitor)’들이 AI가 발전할수록 급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AI 시대에는 특정 노동력이 질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일자리가 아예 사라지거나 임금 등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란 게 강 소장의 진단이다. 글로벌 노동시장 질서 재편을 두려워해 논의조차 뒤로 미루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강 소장은 “우리나라가 ICT 강국이라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새로운 기술혁명에 제대로 대처한 게 아무것도 없다”며 “갑자기 다가올 AI·로봇 쇼크에 대한 논의를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력 재교육은 최소한의 대응책이다. 강 소장은 “주 3일 일하고 2일 교육 받는 시스템을 이미 유럽국가들은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 아이들을 위한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면 교사들의 재교육도 필요하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강 소장은 “아이들에게 기초적인 소프트웨어 코딩을 가르치려 해도 능력 있는 교사를 찾기 어렵다”며 “이제는 ICT·AI·로봇 전문가 등 인재들이 교육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한국 산업사회의 위기를 돌파할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술혁명 선진국 거인에 맞서 우리는 ‘거인 위에 올라간 난쟁이가 거인보다 더 멀리 본다’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며 “아이들이 인터넷상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해 스스로 지식사회를 만들어 가도록 교육방식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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