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시어머니 빤스를 갈아입힌다
다리를 절뚝이며
칠순의 어머니가 할머니와 씨름한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내 이마에
식은땀이 다 난다
귀 어두운 건 피장파장
빌어먹을
하루종일 귀청이 터지도록
소리 질러가며 승강이다
빤스 하나 갈아입히는 것도 전쟁이다
한바탕 일 치르고 나서
눈이 어두워져 돋보기 끼고 신문 보는 손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누구세요?
이제 막 눈을 뜨고 세상 구경 나온 것 같은
저 눈동자
인생은 경력만으로 안 되는 걸 보여 주는 것이다. 빤스 갈아입기 경력 구십년 차인 시어머니를 빤스 갈아입기 경력 칠십년 차인 며느리가 도와주니 청출어람 청어람이다. 어쩌면 세상만사 빤스 갈아입듯 수월한 일 없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녀에게 ‘누구세요?’라고 묻는 것은 얼마나 큰 질문인가. 두 분의 빤스 갈아입기 전쟁 관망한 걸 책망하는 게 아닐 거다. 살수록 아득한 삶과 알수록 캄캄한 앎의 심연에 놓인 당신, 그리고 우리는 진정 누구인가?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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