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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달러', 컨티넨탈





1775년6월22일, 필라델피아. 2차 대륙회의에 모인 12개주 대표(13개 식민지 가운데 조지아주는 당시까지 대륙회의에 참여하지 않았다)가 개막 42일간 갑론을박하던 안건을 하나 통과시켰다. 대륙폐(大陸幣·the Continental Currency) 발행안을 의결한 것이다. 채권 형식이었지만 실제로는 불태환 지폐였던 대륙폐 발행 계획은 일찌감치 수량과 권종(액면금액)이 정해졌을 뿐 시간만 끌어오던 안건.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이유는 12개 주 대표마다 의견이 엇갈렸던 탓이다. 마치 독립 국가처럼 주권을 행사하며 나름대로 독자적인 화폐체계를 갖춰나가던 개별 주들은 대륙폐 발행 자체에 의구심을 품었다. 대륙회의가 단순한 합의체가 아니라 주보다 상위의 연합정부로 발전할 가능성을 무엇보다 경계했다.

‘화폐주조권’을 비롯한 주권 침해를 우려하며 서로 눈치를 살피던 대륙회의가 대륙폐 발행에 전격 합의하게 된 계기는 닷새 전에 일어난 벙커힐 전투. 3,000여명의 영국 정규군을 맞아 아메리카 민병대 2,400명이 저항했던 이 전투에서 민병대는 패배했으나 적에게 두 배의 손실을 안겨주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보급과 지원이 충분했다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반성과 아쉬움은 전쟁비용 충당을 위한 대륙폐 발행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발행액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점. 1차분 200만 달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연말까지 두 차례에 걸쳐 600만 달러가 추가로 발행됐다. 결국 1779년까지 2억4,155만달러 어치의 대륙폐가 뿌려졌다. 영국군도 위조지폐를 마구 찍어대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과다하게 발행된 돈의 가치하락은 당연지사. 애초 발행 당시에는 대륙폐와 1 대1이던 은(銀)과의 시중 교환가격이 1대 168으로 벌어진 적도 있다. 오죽하면 ‘콘티넨털처럼 가치 없는(not worth a Continental)’이라는 말이 아직까지 관용적 표현으로 통용될까.



미국은 대륙폐 남발의 폐해를 톡톡히 치렀다. 미국 정부가 화폐주조권을 의회에 넘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방헌법 제 10조에는 연방정부의 화폐주조와 불태환지폐·지불증서 발행을 금지하는 조항을 담았다. 네이선 루이스의 명저 ‘더 골드(the Gold)’에 따르면 당시 미국인들은 ‘귀족 작위를 하사하는 것 이상’으로 중앙정부의 화폐 발행을 금기로 여겼다. 정부나 의회가 화폐주조권을 갖지 못하는 것은 물론 중앙은행도 세우지 못한 이유도 불태환 지폐인 대륙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 있다.

질이 안 좋은 화폐의 대명사격인 콘티넨털은 과거 완료형일까. 대륙폐는 오늘날의 달러와 구조적으로 다를 게 없다. 불태환 지폐라는 점이 그렇고 마구 발행된다는 점이 그렇다. 비슷한 점은 또 있다. 대륙폐는 반란까지 야기하며 건국 초기 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한 것처럼 21세기의 불태환 지폐 달러는 세계 무역을 볼모로 미국의 글로벌 지배를 보장하는 도구가 됐으니…./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독립전쟁 개시 이후 두 번째 큰 전투였던 벙커힐 전투에서 아메리카 민병대(대륙군)는 사상자 450명을 냈으나 영국군은 1,054명이 죽거나 다쳤다. 전투에 참가했던 영국군 헨리 클린턴 장군은 승전 당일 일기에 ‘이겼으나 끔찍한 전투였다. 이 같은 승리가 반복된다면 영국의 아메리카 지배는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클린턴 장군의 우려대로 미국 독립전쟁에서 영국군은 크게 패하지 않았으나 제풀에 넘어졌다.

** 미국인들은 끝내 전쟁에서 이겨 독립을 따냈지만 애초의 명분이었던 ‘완전한 경제적 자유’는 얻지 못했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세금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독립전쟁 이전에 미국인에게 부과된 세금은 1인당 연 평균 0.016 파운드. 연간 소득의 0.5% 정도였다. 반면 본국의 영국인들은 이보다 20배 정도 많은 세금을 물었다. 독립 후에 미국 연방정부가 매긴 세금은 영국이 식민지 시절 부과했던 금액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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