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오전 7시 30분 부산도시철도 1호선 연산역 승강장. 여느 때처럼 이른 시간 출근하는 승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하지만 달라진 풍경이 보인다.
승강장 가운데쯤 있는 스크린 도어에는 ‘여성 배려칸’이라는 홍보 문구가 붙어 있다. 부산교통공사 직원이 그 앞에 서서 “이 칸은 여성 배려칸입니다. 남성 승객들께서는 다른 칸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부산교통공사는 이날부터 3개월간 도시철도 1호선에서 출ㆍ퇴근 시간에 ‘여성 전용칸’을 시범 운영한다. 출근 시간인 오전 7∼9시와 퇴근 시간인 오후 6∼8시에 운행하는 전동차 8량 가운데 5호차에는 여성만 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승객이 몰리는 시간에 임산부와 영유아를 동반한 여성을 배려하고, 최근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각종 범죄를 예방하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사전에 홍보가 미흡했던 탓에 첫날 운영에 다소 혼란이 있었다. 연산역으로 들어온 신평행 전동차의 5호차에는 남성 승객이 30%가량 차지했다. 가끔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전동차 소음에 묻히기도 했고 이어폰을 낀 승객도 있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지하철 ‘여성 전용칸’ 자체에 대한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임해수(44ㆍ여)씨는 “출근길 전동차 안에서 신체 접촉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내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 회사원도 “출ㆍ퇴근 시간에 붐비는 전동차 안에서 신체 접촉 때문에 불편했는데 여성 배려칸이 생겨 좋은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그러나 일부 여성을 포함해 ‘여성 전용칸’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는 승객들도 적지 않았다. 취지 자체가 남성들로부터 여성의 지하철 성추행 피해를 막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인식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또한, 모든 남성은 사회적 강자이며 모든 여성은 사회적 약자로 간주한다는 남녀 차별적인 인식을 갖게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부산교통공사 홈페이지에는 자유게시판을 통해 오늘 하루에만 60여건의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 일부 부산시민들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지하철 여성 전용칸 시행의 부당함을 알리고 있다.
부산교통공사는 오는 9월 19일까지 여성 전용칸을 시범 운영하면서 여론을 수렴해 폐지 또는 확대 시행 방침을 정할 계획이다. 해외에서도 여성 전용칸 운영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여성 전용칸 운영 선례가 없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는 2007년과 2011년 각각 출ㆍ퇴근 시간에 운영하려다가 역 성차별 지적 등 반대여론이 강해 무산됐다. 대구도시철도는 2013년 출근 시간에 추진하려다가 같은 이유로 보류했다.
부산교통공사가 남성들은 물론, 일부 여성들도 불편해 하는 ‘여성 전용칸’을 과연 얼마나 끌고 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재아인턴기자 leejaea55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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