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싱거운 작품이다. (중략) 악균을 양성하는 썩은 작품이다.” ‘만년설’이라는 필명의 비평가는 1928년 7월 중외일보를 통해 소설가 심훈이 연출하고 당대 최고 제작비를 들인 영화 ‘먼동이 틀 때’에 대해 이처럼 독설한다. 심훈 또한 같은 지면에 반박문을 싣는데 비꼬는 맛이 아주 일품이다. “평필을 든 사람이 ‘고린내가 나는 신흥예술’이라는 둥, ‘가소로운 날탕패’라는 둥, 자기는 익명을 하고서 개인의 이름을 또박또박 박아가면서 인신을 공격하기를 예사로 여기고 해동(孩童·어린아이)도 삼가야 할 욕설을 함부로 퍼붓는 그 태도가 너무나 야비해서 족히 들어 시비를 가릴 바 되지 못하나….”
1919년 단성사에서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투’가 상영된 이래 영화는 누구나 사랑해마지않는 문화 상품으로 금세 자리 잡았다. 특히 ‘상록수’의 심훈, ‘태평천하’의 채만식, ‘문장강화’의 이태준 등 저마다 필력을 자랑하던 당대의 지식인들은 영화에 대해 말하고 논쟁하길 즐겼다. 책은 바로 식민지 조선에서 제출됐던 그 같은 비평문들을 모은 자료서이자 해설서다. 1910년대부터 해방 이전까지의 조선 영화를 둘러싸고 전개된 핵심적 비평문 55편을 선별해 초기영화, 변사, 사회주의 영화 운동 등 14개의 주제로 나눠 엮었다. 영화사(史)적 가치가 훌륭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으며 근대의 명문들을 읽는 재미도 아주 좋은, 추천하고픈 인문학서다. 4만원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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