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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빨간 마후라' 19명 한자리에

공군 6·25 출격조종사 초청행사

6·25전쟁 당시 조국 하늘을 수호하기 위해 출격한 F-51D 전투기 편대. /사진제공=공군






6·25전쟁 당시 평양 승호리 철교 차단 작전을 성공시킨 ‘빨간 마후라의 원조’ 박재호 예비역 준장. /사진제공=공군


공군은 6·25전쟁 66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6·25전쟁 출격 조종사 19명에 대한 초청행사를 열었다.

6·25전쟁 발발 당시 우리 공군은 창설된 지 9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전투기 한 대도 없어 L-4·L-5·T-6 같은 경비행기로 작전에 투입됐다. 전쟁 발발 다음날 미국의 전투기 지원 결정으로 10명의 한국 조종사는 일본으로 건너가 단 4일간 기종 전환 교육을 받은 뒤 F-51D 전투기를 몰고 현해탄을 건너 복귀했다. 새 기종에 적응할 새도 없었지만 우리 공군은 6·25전쟁 기간 빛나는 공적들을 세웠다.

유엔 공군도 못한 평양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인 활약상이다. 평양 동쪽 지점에 있는 승호리 철교는 적의 보급물자를 수송하는 전략 요충지여서 반드시 차단해야만 했지만 강력한 대공포가 배치된 탓에 유엔 공군은 수많은 출격에도 폭파하지 못했다.



결국 승호리 철교 차단 임무는 우리 공군으로 넘어왔고 1952년 1월12일 첫 출격에 나섰다. 이날 6대의 전투기가 두 차례 출격했지만 폭파에 실패한 공군은 작전을 수정했다. 8,000피트 고도에서 강하해 3,000피트에서 공격한다는 기존 작전을 4,000피트에서 내려와 1,500피트의 저공에서 공격하기로 수정한 것이다. 대공포탄이 2,000피트까지 도달한 점을 고려하면 목숨을 내놓은 작전이었다.

1952년 1월15일 6대의 전투기로 구성된 2개 편대가 세 번째 출격에 나서 폭탄 12발과 로켓탄 20발, 기총 4,700여발을 퍼부어 승호리 철교 중앙 부분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작전에 각각 편대장과 편대원으로 참여한 윤응렬 예비역 소장과 박재호 예비역 준장도 이번 초청행사에 자리했다. 공군은 이들을 포함해 당시 활약한 조종사 19명을 초청했다.

윤 예비역 소장은 “현재 대한민국이 이룩한 눈부신 발전을 보고 있노라면 전쟁 당시의 고난과 역경을 모두 잊을 수 있다”면서 “후배 조종사들이 끊임없는 정진으로 조국 하늘을 굳건히 수호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6·25전쟁 기간 출격한 공군 조종사는 총 129명이며 이 중 25명이 전사했고 지금은 39명이 생존해 있다. 6·25전쟁 기간 한국 공군은 총 1만4,163회 출격해 적의 군용건물 1,799곳, 보급물 집적소 1,229곳, 철로·도로·철교·교량 1,220곳, 벙커 845곳 등을 파괴했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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