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물질인 라듐으로 만들어진 ‘라디터(Radithor)’는 1920년대 미국의 인기 건강식품 중 하나였다. 하버드대 중퇴생이면서도 자신을 의사라고 속인 윌리엄 베일리는 라듐을 극소량 먹으면 인체 기능을 활성화한다는 설명과 함께 이 제품이 당뇨·빈혈·천식·소화불량 등을 다스릴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선전했다. 이렇게 해 팔린 양이 1925년부터 1930년까지 무려 40만병. 결과는 끔찍했다. 백만장자였던 에번 바이어스는 이 방사능 묘약을 1,000병 마신 탓에 온몸의 뼈가 하나씩 부서져 나가는 극심한 고통 속에 죽어 갔고 이름 모를 수많은 목숨도 같은 운명에 처했다. 인간의 욕심과 무지가 사기꾼과 만나 벌어진 비극이었다.
사기는 언제나 우리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든다. 1957년 8월30일. 경주경찰서 서장실 전화벨이 울렸다. “나 이강석인데….”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이 한마디에 서장의 목은 한없이 굽혀졌다.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이자 국회의장의 장남인 ‘귀하신 몸’이니 극진한 대접이 뒤따를 밖에. 영천·안동·대구도 다르지 않았다. 사흘 만에 밝혀진 ‘이강석’의 진면목은 22세의 평범한 청년. “가관이었습니다. 귀하신 몸이라고 굽실거리는 모습이란….” 가짜 이강석의 검찰 진술서는 강자에게 한없이 약한 사회에 대한 조롱으로 가득 찼다. 외환위기 시절 3,700억원대라는 당대 최대의 사기 행각을 벌인 변인호 사건도 관행에 매달리는 금융거래의 맹점을 그대로 노출했다.
검찰이 희대의 사기범 조희팔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했다. 알려진 피해금액만 5조원, 피해자만 7만명에 달하는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극은 또 허망하게 결말이 났다. 더 이상 이러한 피해자들이 안 나오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국내 사기 건수는 23만 8,000건, 피해액만 13조원에 달한다. 권력을 탐하고 한 방을 노리는 요행수가 사라져 제2의 조희팔을 다시 보지 않는 것은 요원한 꿈일까.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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