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이 칼럼에서 우리 가족이 고통받은 가습기 살균제의 참혹함을 술회한 바 있다. 지난 2010년 멋모르고 옥시 제품 등을 쓴 후부터 원인 미상의 폐렴으로 1년여간 병원 입원을 밥 먹듯이 한 세 살짜리 아이와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마른기침을 달고 산 아내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분이 걱정과 위로를 건넸다. 비슷한 일을 겪었다며 공감하는 말도 들었다. “어린 애 둘이 병원을 자주 들락거렸는데 가습기 살균제를 써 그랬던 것 같다” “집사람 아팠던 것이 돌이켜보니 가습기 살균제랑 연관이 있는 게 분명하다” “가습기 살균제 노출이 많았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등 예상보다 주위에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 더 놀란 것은 이들 대부분이 앞으로 5년·10년 뒤 살균제 후유증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몇 달 전 가슴이 답답하고 갑자기 기침을 계속한다며 혹시 살균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아닌지 걱정하던 아내의 모습과 판박이였다. “설마 그러겠어, 괜찮을 거야”라고 아내를 달랬지만 올봄부터 가습기 살균제의 본격 조명에 맞춰 폐 손상 등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접하면서 막연한 불안감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의 진단이 폐를 찌른다. 그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 있는 유해물질은 폐에 치명적 손상을 유발하는 것은 물론 내분비계를 교란해 다양한 질환을 야기할 수 있다”며 “특히 발암성 물질이어서 충분히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화학물질 관리 전문가인 임종한 환경독성보건학회장의 의견도 마찬가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중증 폐 손상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부위로까지 나타날 수 있다. 일부 성분은 발암성이 의심돼 노출 몇 년이 지난 뒤 암 발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 뒷말이 더 충격적이다. “꽤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이 의미 있는 노출이 됐다는 추정에 비해 사망자가 200여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 알려진 피해자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고 현재의 사망 사건은 더 큰 비극의 시작일 수도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는 SK케미칼(당시 유공)이 개발한 지난 1994년부터 판매가 중단된 2011년까지 20개 종류가 연간 40만~60만개 판매된 것으로 추산되며 이를 이용한 사람들만 894만~1,087만명에 달한다. 이 중 신고된 피해자는 1·2차였던 2014년과 2015년 4월까지 생존 384명, 사망 146명이었는데 지난해 말 생존 673명, 사망 79명이 추가됐고 특히 올 들어 4차 접수 결과 무려 사망자 462명 등 전체 피해자만 2,200여명으로 폭증했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이고 피해자 보상 문제도 언급되는 등 외견상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종착역으로 가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우려대로 살균제 비극은 오히려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정황상 더 많은 피해자가 나타날 가능성도 짙다. 드러나지 않는 피해자까지 합하면 실로 아찔하다. “살균제에 고농도로 노출됐거나 사용 중 건강 이상을 느낀 잠재적 피해자가 작게는 30만명, 많게는 22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의 지적은 가히 메가폭탄급이다.
우리 가족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다. 하지만 바쁘기도 하고 접수 절차가 복잡하기도 하고 불행 중 다행으로 지금 무탈하게 살고 있다는 점을 위안 삼고 피해 신고를 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을 포함해 살균제에 의미 있게 노출된 수십만, 수백만 명의 국민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심각한 폐 질환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정부는 지금이라도 체계적인 독성 연구는 물론 전국 2~3차 병원 내원자에 대한 가습기 살균제 사용 여부 전수조사, 전 국민 대상 역학조사, 전국 지자체와 보건소에 신고센터 설치 등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내는 국가적 차원의 조치 요구를 허투루 넘기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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