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가 덥네. 아침 잘 챙겨 먹고 다니렴.” “주말에 대청소를 했더니 온몸이 뻐근하다. 너희도 일하느라 힘들 텐데 중간중간 꼭 스트레칭 해 주렴~”
지난 3월 결혼한 직장인 김현정(28·가명)씨는 최근 들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시댁 식구들이 있는 대화방에 메시지가 새로 뜨지 않았을까 늘 긴장하고 있기 때문.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시댁 대화방에 초대받았다는 김씨는 “아침 먹으라는 소리는 내 아들 밥 굶기지 말라는 이야기 같고 대청소했다는 소리는 내려와서 청소 안 하고 뭐했느냐는 핀잔처럼 들린다”고 호소했다. 그는 “비꼬아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고부간의) 관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리한 해석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하는 것 같다’며 카톡을 탈퇴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목격된다. 실시간 메시지라는 카톡의 장점이 오히려 족쇄로 작용하면서 아예 카톡 탈출을 감행하는 것이다. 반면 부모들은 세대 차를 극복하고 가까워지려는 자신들의 노력을 몰라주는 게 섭섭하다고 항변한다. 스마트폰의 증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장으로 고부간의 갈등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서울경제신문 취재 결과 며느리들이 고충을 토로하는 부분은 ‘시댁 식구에게 답문하기’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최대한 신속하게, 센스 있는 답변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크기 때문. 김 씨는 “시어른들이 뜬금없이 ‘좋은 글’이나 감동 영상을 보내실 때가 있다”며 “적절한 응대 멘트를 찾아내느라 진땀이 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동서나 형님 등 비교 대상이 있는 경우에는 그 중압감은 더욱 커진다. 얼마 전 상견례를 마치고 ‘단톡방’에 초대받았다는 서주영(29·가명)씨는 “예비 시어머니와 동서 이렇게 셋이 채팅하는데 동서가 항상 나보다 빨리 답을 하는 편”이라며 “딱히 뭐라고 한 건 아니지만 눈치가 보이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지난 주에 예비 시엄마가 ‘컴퓨터가 고장이 났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는데 동서가 먼저 ‘제가 AS 불러 드릴게요’라고 톡을 보냈다”면서 늘 비교당하는 것 같아 우울하다고 호소했다.
‘카톡 시집살이’의 고충을 토로한 며느리들은 공통적으로 ‘몸은 떨어져 있지만 항상 같이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지난 해 12월 새댁이 된 직장인 박아롱(31·가명)씨는 매일 아침밥 사진을 찍느라 혼이 빠질 지경이다. 박씨는 통영에 있는 시댁에 내려갈 때마다 ‘아침밥을 먹어야 건강하다’는 시부모의 ‘아침밥 타령’을 더는 모른 척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오늘 아침에도 ‘어머님 요리법대로 냉국 해먹으니 정말 맛있어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며 “영상 통화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귀띔했다. 사진은 미리 찍어두거나 다운받은 사진을 활용할 수 있지만 영상 통화는 실시간이라 속이는 게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카톡 대화명’ 때문에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네티즌은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에 “시어머니가 ‘얼마 벌지도 못하면서 회사 다닌다고 유세 떤다’고 하길래 대판 싸웠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남편한테 퍼붓고 그 날 카톡 대화명을 ‘어이가 없다’고 바꿨다. 진짜 어이가 없었던 건 그 사건 몇 달 후에 시어머니가 ‘그 때 카톡 대화명 나 보라고 쓴 거였냐. 기분 나빴다고 전하라’고 아들을 시켰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남겼다.
24시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알람에 노이로제
SNS 탈퇴로 이어지기도
이 같은 ‘카톡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해 결국 ‘카톡 탈출’을 감행하는 이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한 달 전쯤 시어머니께 스마트폰을 선물했다는 이정민(37·가명)씨도 마찬가지. 이씨는 “전화 바꿔드린 다음부터 틈만 나면 손주 사진 보내달라고 하시고 보이스톡하면 공짠데 왜 전화 안 하느냐고 타박받았다”며 “업무 시간에 갑작스럽게 전화가 올 때도 많아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보이스톡이 끊긴 줄 알고 시누이가 ‘또 엄마가 먼저 전화했어?’라고 묻는 것도 들었다는 이씨에게 카톡 탈퇴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그러나 카톡을 탈퇴한 이씨의 모바일 시집살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최근 시어머니에게 ‘A라는 앱이 영상통화 되니까 다운 받아 놓으라’는 메시지를 받았다”며 “카톡 말고도 앱이 많다는 점을 깜빡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얄미운 시누이 뒷담화’ 때문에 곤혹을 치른 강윤희(33·가명)씨는 실수한 그 날 바로 카톡을 탈퇴한 경우다. 강씨는 “‘시누이가 해외 출장 다녀오는 건 귀신같이 알아서 면세로 사달라고 하는 게 항상 한 트럭’이라는 메시지를 친구한테 보내려다가 실수로 시어머니한테 보내고 말았다”며 “시어머니가 카톡을 읽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강씨는 “카톡을 읽고도 별 말이 없으셔서 더 무서웠다. 수습은 해야 해서 그 날 저녁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안부 전화 드리고 바로 카톡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며느리들의 고충 토로는 5060의 스마트폰 보급 확산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세대별 스마트폰 이용 특성과 영향력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50대 스마트폰 이용률은 2012년 31.4%에서 81.9%로 60대 이상은 6.8%에서 32.1%로 급증했다. 거의 모든 스마트폰 사용자가 인스턴트 메신저를 이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어른과의 수시 채팅’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2030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대목은 모바일 SNS 이용률 역시 50대에서 대폭 증가한 점이다. KISA한국인터넷진흥원과 미래창조과학부가 공동으로 진행한 ‘2015 모바일인터넷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50대의 모바일 SNS 이용률은 2014년 36.7%에서 60.5%로 전 연령대 중에서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며느리, 아들, 사위 등에게 SNS 친구를 신청하는 비율도 덩달아 증가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SNS 이용 이유는 관심사 공유, 취미활동, 일상생활 기록 등이 상위를 차지했다.
시댁용과 친구용으로 SNS 계정을 별도로 이용하는 며느리가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는 개인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3년차 주부인 윤승혜(34·가명)씨는 “나이 차이가 얼마 안나 시누이를 동생처럼 여겼는데 가족 모임 때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들먹였다”며 “뒤통수 맞은 그 날 이후 철저히 시댁용과 친구용으로 나눠서 비공개로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시어머니 쪽에선 “보고 싶어서 선톡했는데…시집살이 낙인 서운하다” 토로
전문가 “적당한 무관심과 거리 두기 필요…오프라인 관계 개선 노력부터”
이 같은 ‘카톡 시집살이’ 낙인에 5060 부모 세대들은 서운함을 내비친다. 선의로 한 행동을 몰라주고 성가시다며 불편함을 토로하는 데 따른 것이다. 한영애(58·가명)씨는 “사는 게 바쁘니 1년에 한두 번 밖에 얼굴을 못 보지 않냐. 잘 있나 궁금해서 ‘선톡’하는 건 부모라면 당연한 일”이라며 시댁이라는 굴레 때문에 젊은 며느리들이 과민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씨는 “동창회나 모임에서 이야기해보면 며느리 편하게 해준다고 배려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라며 “요즘은 ‘며느리 살이’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냐”고 되물었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고부관계를 위해서는 ‘적당한 무관심과 거리 두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주은우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흔히 모바일이 수평적 대화 창구라고 하지만 모든 테크놀로지나 미디어는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제도화되느냐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라며 현실의 관계가 SNS상에도 그대로 투영된다고 분석했다. 주 교수는 “SNS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 확보라는 측면은 있지만 ‘위계적 관계’를 평등하게 만든다는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즉 온라인에서 가까워지려는 노력보다는 오프라인 관계를 개선하는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이어 “24시간 노출, 즉각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SNS의 특성은 편리함뿐 아니라 프라이버시 침해, 즉각 응답으로 인한 감정 격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SNS가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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