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8·9전당대회에서 당권경쟁에만 매몰돼 있다 보니 야당의 경제민주화 등 각종 입법독주에 속수무책이다. 당내 혼선을 수습하기 위해 혁신비상대책위를 꾸렸지만 컨트롤타워 역할은 고사하고 친박·비박 사이에서 눈치만 보다 보니 야당의 입법공세나 개별 의원들의 행동을 제어할 리더십도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그나마 당내 최고의 경제통인 김광림 정책위의장이 혁신비대위 회의(월·수·목)와 원내대책회의(화·금)를 통해 현안에 대한 방향을 잡아주면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당내 경제통 의원들은 야당의 각종 경제민주화 이슈에 공개적인 발언을 자제하면서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의 흐름과는 다른 개별 의원들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실제 당내 대표적 경제통인 이종구 새누리당 의원은 4일 열린 대정부 경제 분야 질문에서 “정부의 산업 구조조정을 보면 과거 청산적인 구조조정에 머물고 있다”며 야당 의원보다 더 혹독하게 비판했다.
기업인 출신인 김세연 의원 역시 정부와 기업들이 강하게 반대해온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꼽히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발의한 상법개정안에 공동 발의자로 참여하는 등 튀는 모습을 보였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여당 의원들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야당의 입법에 동조할 수는 있지만 정부 정책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야당 의원과 같은 비판을 하거나 당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야당 정책을 공동발의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당의 구심이 없다 보니 생겨나는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여당은 8월 전대를 앞두고 지도체제 개편안을 놓고도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당 혁신비대위가 지난달 14일 단일지도 체제로 개편하는 안을 발표했지만 비박들이 반발하면서 6일 예정된 의총 후 결정하기로 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이미 혁신비대위가 이 같은 개편안을 확정 의결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의총을 거쳐야 한다는 반론을 내놓고 있어서다. 모두 당권경쟁 이후 유불리를 따지다 보니 이 같은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해서 재연되는 것이다.
당내 혼란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친박 당권 주자인 최경환 의원이 전대 불출마 뜻을 고수하자 이날 친박 일각에서 ‘맏형’ 격인 8선의 서청원 의원을 내세우는 움직임이 알려지자 서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맞지 않는 얘기”라고 일축하는 등 혼선이 계속됐다.
4선의 한 의원은 서울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당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게 가야 하는데 이를 끌고 갈 리더십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며 “서울시가 청년수당을 도입한다고 하는데 (당에서는 아무런 얘기도 없어) 내가 서울시 관련자를 직접 불러 따졌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입법만이 아니라 내년 대선을 앞두고 법인세 인상이나 최저임금 인상 등을 놓고 찬반논리가 극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전망되지만 여당이 전대 이후에도 지금처럼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 정부 정책의 급변에 따른 혼선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초선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야당 입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아니고 상임위에서 많이 언급했는데 보도가 잘 안 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발의 단계로 최종 입법까지는 상임위와 본회의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여소야대 국면에서 2야가 찰떡공조를 보여 여당의 강력하고 신속한 리더십이 갖춰지지 않으면 대규모 입법 가능성도 현실화될 수 있다. 경제단체의 한 간부는 “(더민주가 발의한 상법개정안의 경우) 사측이나 최대주주를 경영에서 배제하는 게 경제민주화인지 모르겠다”며 “무엇이 경제민주화인지 알 수 없는 법안이고 해외투기자본에 경영권이 심각하게 휘둘릴 수 있다”고 야당의 입법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홍길·박효정 기자 wha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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