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우리가 사는 시대는 기술로 세상을 바꿔 미래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기업들의 전장이라고 할 정도로 초경쟁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기존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전략은 개별 프로젝트를 포트폴리오로 관리해 R&D에 대한 투자 대비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이었으나 급격한 기술 발전과 다양한 고객 니즈로 제품은 점점 고도화하고 제품 수명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에 기업 입장에서 R&D 투자비는 증가하나 결과물은 활용할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해 R&D 수행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이러한 요인으로 R&D는 단순한 연구개발 수준을 떠나 사업화 대상이어야 한다는 개념으로 사업연계기술개발사업(R&BD·Research&Business Development)이 출현했다. R&BD는 R&D 초기 단계인 과제 선정부터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사업화가 가능하도록 단계별로 연구 방향 설정과 조정을 해나가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R&BD 개념 도입 전에는 첨단기술이나 상품이 개발되면 혁신성을 중시하는 얼리어답터가 주도하는 초기 시장에서 실용성을 중시하는 일반고객이 주도하는 주류 시장(mass market)으로 진입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는 캐즘 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고도화한 융복합 헬스케어 시장에서는 이러한 캐즘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기술이 너무나 많다. 이는 고객 니즈가 반영되지 못하면 더 이상 기술 또는 제품으로 지속 가능한 가치 창출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술 중심에서 고객 중심의 니즈가 반영된 R&BD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R&BD 개념이 도입되면서 기업들은 세계 1위 제품 출시로 시장 선점을 위한 R&D 비전을 세우고 기존의 빠른 추격자(패스트팔로어)에서 선도자(퍼스트무버)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한 미래에 도전하고 자신만의 미래 비전을 일관성 있고 신속하게 실현하는 기업만이 성공 모델이 될 수 있다.
R&BD는 기술 사업화를 전제로 한 R&D의 산물로 기술이 융복합하고 난도가 높아짐에 따라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죽음의 계곡’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간 헬스케어 분야에서 R&BD는 많은 한계점을 노출해 성공적 수행이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사업화를 위한 연구의 기획 및 평가와 지식재산권의 효과적인 관리 전략이 미흡했고 의료진의 미충족 니즈(unmet needs)가 반영되지 못한 채 R&D가 진행되는 등 마치 설계도 없는 건축에 비유될 만큼 많은 문제점이 도출됐다. 또 국내 의료진의 진료 부담이 선진국 대비 크다는 점과 환자맞춤형 진료 등 미래 의학의 패러다임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헬스케어 분야에서 기초과학 연구로 밝혀진 개념이나 지식·기술을 관련 진료와 예방 등 임상에 적용하기 위한 중개연구는 기초연구 성과의 임상연구 진행에 가교 역할을 해야 하나 R&BD 연계 시스템 미비로 기초 분야의 R&D 성과에도 불구하고 인프라 정책이 공급자 관점에서 추진돼 기술 사업화 활용도가 낮고 국제 기술협력 성과도 미흡했다. 따라서 대학·병원 등 연구기관의 혁신적 연구성과 활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특허 등 지식재산권 창출을 통한 원천기술 확보와 기술이전·사업화 등을 통한 국제 경쟁력 강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 정부는 대부분의 국내 병원이 진료 업무에 치중하고 R&D 기능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함으로써 중요한 임상적 지식자산이 사장되는 현실을 감안해 기술지주회사 및 자회사 설립을 전제로 대형 국책과제 수주를 제안했다.
그러나 기술지주회사 또는 자회사의 본격적인 정착 및 확산을 위해서는 각종 관련 규제 및 초기자금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산학연병 협력을 통한 중개연구를 활성화하며 임상의학자 등 수요자의 미충족 니즈를 반영한 목적 지향적, 환자 중심적 연구가 제대로 수행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류규하 삼성서울병원 연구전략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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