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방영된 미 NBC 방송의 투데이쇼. 사회자가 이날의 특별 출연자인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게 어떤 술을 즐기느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보드카 마티니요. 제임스 본드 방식으로 흔들어서(Vodka Martini. The James Bond way, shaken).” 보드카를 즐겨 마시는데 그중에서도 강인하면서 심플해 남성적 칵테일로 알려진 마티니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실제 영화 007시리즈 원작 소설에서 보드카 마티니는 제임스 본드가 즐겨 찾는 술로 등장한다.
“젓지 말고 흔들어서(Shaken, not stirred)”라는 본드의 달콤한 주문과 함께. 힐러리 클린턴과 제임스 본드, 보드카 마티니. 부드러우면서 강하다는 점에서 셋이 제법 잘 어울린 듯하다. 클린턴 전 장관이 보드카 애호가이면서 주량도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클린턴이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던 2004년의 일이다. 에스토니아 출장 중이던 클린턴이 존 매케인 당시 공화당 상원의원과 술 대결을 벌였다.
마주 앉아 독한 보드카를 한 잔씩 주고받으면서 술 실력을 겨뤘다. 두 사람이 얼마나 마셨는지는 당시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 클린턴이 “무승부였다”고 회고했지만 워싱턴 정가에서는 ‘클린턴의 완승’이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이처럼 클린턴은 술을 정치적 윤활유로 사용하는 데 소질이 있는 모양이다.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 그녀만의 ‘필살기’인 보드카 술자리가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클린턴 대통령 취임 100일 가상 시나리오’ 기사를 통해서다.
야당과의 소통 수단으로 농구·골프 회동을 즐겼던 버락 오바마와는 달리 클린턴은 ‘술 한잔의 대화’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다. 조용한 술자리를 선호했던 로널드 레이건, 린든 존슨 전 대통령처럼 될 거라는 얘기다. 정적이나 야당 설득을 위해 독주를 마다하지 않을 클린턴 대통령을 상상하니 왠지 멋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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