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일 ‘배신의 정치’라고 비판해온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을 만나 대구 K2 공군기지 이전 등 지역 현안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8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 전원을 초청해 오찬을 한 직후 행사장 출입문에 서서 떠나는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다. 박 대통령은 유 의원 차례가 되자 “아유, 오랜만에 뵙습니다”라며 먼저 악수를 건넨 뒤 “어느 상임위세요”라고 관심을 보였다. 유 의원이 “기획재정위로 갔습니다”라고 답하자 박 대통령은 “아, 국방위에서 기재위로 옮기셨군요”라고 말을 이었다. 19대 국회 후반기 유 의원의 소속 상임위는 국방위였는데 그 당시 활동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유 의원이 “(대구의 최대 현안인) K2 비행장 옮기는 게 큰 과제죠”라고 하자 박 대통령은 “항상 같이 의논하면서 잘하시죠”라고 화답했다. 두 사람이 언제 앙금이 있었느냐고 할 정도로 부드러운 상황에서 ‘고향’의 현안을 놓고 대화를 주고 받은 것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35초에 불과했지만, 두 사람의 지난 과거를 들여다 보면 많은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과거 친박 핵심이던 유 의원은 국회 원내대표 연설과 국회법 개정안 처리 과정 등을 거치면서 박 대통령과 멀어졌다. 박 대통령은 유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비판해왔다. 급기야 지난 4·13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박인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유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당 안팎에서는 대내외적인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계파 간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와 국민을 위해 당과 정부가 혼연일치가 돼 남은 하반기 국정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 박 대통령이 과감하게 화합 카드를 꺼내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비박의 아이콘이었던 유 의원과 손을 잡으면서 계파갈등을 없애고 오로지 남은 국정 마무리에 올인하겠다는 뜻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도 이날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이야기를 유독 강조했다. 당 소속 126명의 의원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건네다 보니 박 대통령은 다른 의원의 경우 10초 정도 짧은 인사만 건넸지만 유 의원과는 35초 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도 긍정 해석을 더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친박 의원은 “126명의 의원과 전부 악수하는 그런 자리였기 때문에 대통령이 (척을 졌던) 유 의원과 악수했다고 해서 화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4선 의원의 체급 자체가 다른데 동급생이 서로 싸우다 화해한 것과 같은 표현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박계와 갈등을 빚어온 김무성 전 대표에게는 여름휴가 계획을 묻는 등 친근감을 보이며 화해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대 출마를 결정하지 못한 당내 최다선인 서청원 의원과는 맨 마지막에 악수하며 인사를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정진석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오찬 분위기에 대해 “대통령이 유 의원과 김무성 전 대표에게 손을 먼저 내밀어 인사하고 덕담도 나누고 했다”며 “완벽한 오찬회동이었다”고 긍정 평가했다. 자평했다.
정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정말 세심하고 소상하게 준비를 많이 해오고 의원들 개별적으로 소통하고 대화하려고 많은 준비를 해왔다는 걸 느꼈다”며 “126명의 의원이 참석했는데 아주 대만족스런 시간이었다. 이런 형식의 만남은 전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홍길·류호·박효정기자 wha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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