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 서구에서 이슬람교의 폭력성을 비판할 때 자주 쓰는 이 말은 흔히 생각하듯 무슬림의 교리가 아니다. 이 말은 중세 로마 가톨릭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만들었다는 것이 다수설로 이슬람교가 급속도로 확산하는 과정을 보며 생긴 이슬람 포비아의 다른 표현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이슬람 포비아는 바다 밖 저 멀리 있는 잠재적 테러 집단에 대한 공포감 수준이었다. 2001년 터진 9·11 테러는 잠재를 현재로 바꾸고 바다 밖 저 멀리를 내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데려온 셈이다.
한국에서 이슬람 포비아가 구체화한 것도 9·11 테러 때다. 이후 고(故) 김선일씨 참수, 시나이반도 버스 폭탄 테러 등이 일어날 때마다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이슬람 포비아는 어느덧 국가의 정책마저 흔들 정도로 힘을 키웠다. 정부가 지난해 6월 전북 익산 식품단지에 할랄기업 입주를 추진하자 기독교계에서 반대 의견이 나왔다. 이들은 단지가 완공되면 수십만 명의 무슬림이 몰려들고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터무니없는 주장이었지만 정부는 버티지 못하고 계획을 철회했다. 대구시가 주관한 ‘한국형 할랄 6차산업 육성사업’도 정부 지원을 약속받은 지 7일 만에 무산됐다. 익산 때와 마찬가지로 무슬림이 몰려온다는 소문에 무릎 꿇은 것이다.
정부가 최근 할랄과 코셔를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히자 벌써부터 반이슬람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익산과 대구의 경우를 보면 코셔는 몰라도 할랄의 미래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천천히 생각해보자. 테러 탓에 포비아가 생겼다면 그것은 이슬람교가 아니라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가 원인을 제공했다. ‘KKK’가 저지른 나쁜 짓을 보고 기독교를 욕하지 않듯이 IS의 테러를 보고 이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근거도 없는 이슬람 포비아의 싹을 지금 잘라내지 않으면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 선거 후보로까지 만든 미국처럼 될 수도 있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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