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이별이 찾아왔다. 이별은 늘 그렇듯 안정되고 평화롭다고 여긴 일상에 금이 가고 몸에는 이상징후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의미하기도 한다.
서머싯 몸 수상작가인 저자는 이른바 금수저였다.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나 활발하고 적극적이면서도 고풍스러운 교육을 받았던 그는 기숙학교, 옥스퍼드대를 거친 이른바 영국의 엘리트 여성이었다.
이별은 성공회 교구 신부였던 남편이 가톨릭 사제가 되겠다고 선언한 데서 비롯됐다. 남편이 떠나자 그녀는 시골집으로 이사를 했고, 자녀들은 성장해 학교로 갔으니 혼자가 됐다. 시끄럽고 활기찬 공기에 익숙했던 그녀는 한적한 시골집에서 새로운 무엇을 만났다. 바로 침묵(silence)이다.
그는 정원을 가꾸면서 침묵은 단순히 고요함의 끝이 아니라 친구가 되어 그 속에 빠져 일을 하는 ‘고요한 창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정원이 문학이나 예술 작품 속에서 사상과 생각 그리고 욕망을 반영한다는 데 흥미를 느꼈다. 정원에 대한 연구에 빠져드는 계기였다. 또 다른 만남은 기도다. 세속적인 희망을 갈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혼자가 된 그녀에게 기도란 한 인간으로서의 완성을 꿈꾸는 그러한 시간이었다. 기도가 어렵지만 무엇 보다 더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것도 알게 됐다.
늘 활기차고 북적대는 집안 분위기 덕분에 대화와 토론 만큼은 자신이 있어 ‘식탁대화(deipnosophy)’를 취미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저자가 이젠 정원 가꾸기와 기도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는 침묵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단어의 구체적인 의미와 개념 그리고 역사 속 인물 중 침묵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침묵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 저자는 또 다른 도전을 시도했다. 황무지로의 여행이었다. 그는 침묵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은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자연환경이 아니라 황무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책은 자신이 침묵으로 빠져들게 된 계기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 더 침묵적인 삶을 찾아 떠난 여정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잉글랜드 북부의 웨어데일, 스코트랜드 북부 하일랜드 등에서 지냈던 침묵의 삶과 그 속에서 몸과 마음의 일체감을 느끼게 되는 과정을 차분히 소개한다. 책은 다양한 문학적 사례를 곁들여 조용한 삶이 주는 기쁨과 희열을 함께 전한다.
페미니스트 작가로 알려진 저자는 중년 여성의 독립된 삶이 필요한 이유와 가치에 대해서도 말한다. 결혼 후 자녀와 남편의 뒷바라지에 자신의 정체를 잃어버린 채 갱년기라는 불청객을 만나면서 불쾌한 신체적 변화와 급격한 노화로 좌절감에 빠지게 되면서 여성으로서의 인생이 막을 내리는 게 아니라는 것. 이 시기가 되면 비로소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말한다. 혼자된 중년 여자의 삶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는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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