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연일 낮과 밤에 30도를 웃돌고 있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날씨가 푹푹 쪄서 나다니기가 어렵다는 말을 인사로 주고받는다. 사무실에만 있으면 폭염의 맹위를 잘 모르지만 거리에 나서기만 하면 더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상황이 꽤 심각했던지 국민안전처에서 “폭염시 외출이나 야외 활동 자제”를 당부하는 문자를 자주 발송하고 있다.
그래도 낮은 밤보다 사정이 낮다. 시원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며 더위를 피할 수도 있고 찬 음료를 마시며 더위를 식힐 수도 있다. 아니면 이열치열을 내세우며 더위와 한판 싸움을 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밤이 되면 더위의 고통은 더 심해진다. 밥 먹을 때 하던 이열치열을 잠자리에서 할 수도 없으니 잠을 쉽게 이룰 수가 없다. 잠을 이루지 못해 TV나 영화를 보려 해도 내일을 생각하면 오래 볼 수가 없다. 이래저래 무더운 밤은 낮보다 훨씬 고통스럽다. 더운 여름날 밤에 사람을 더 괴롭히는 상황이 있다. 몸에 피곤이 쌓인 뒤라 밤이 낮보다 피곤한데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제 자야지’하며 자꾸 최면을 걸어도 잠은 가까이 오지 않고 더 멀어지니, 잠을 자고 난 뒤에도 개운하지 않고 피로감이 더 밀려온다.
우리는 30도를 웃도는 여름철이 되면 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 더위가 주범이라면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면 잠을 이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불면의 원인은 더위 이외에 다른 곳에도 있다. ‘노자’를 보면 사람이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역설적으로 불행하게 살아가는 이유를 욕망에 주목해 논의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니 미래의 욕망 충족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미래에 실현될 욕망의 볼모로 잡혀 있는 셈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 쉬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코 쉴 수가 없고 계속 움직여야 한다. 의식이 멈출 줄을 모르고 과도하게 활성화돼 있으니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니게 된다.
노자는 쉬어도 쉰 것이 아닌 상태에 놓인 사람에게 탈출구를 제시한다. “바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게 흔들리지 않는다(불견가욕·不見可欲, 사민심불란·使民心不亂).” 우리는 “무엇을 해야겠다”라는 목표를 정하는 순간부터 그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짧은 시간 단위로 계속 실태를 점검하게 된다. 특히 동료나 기업끼리 경쟁을 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쉬는 순간에도 경쟁자는 쉬지 않는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즉 휴식은 복지의 차원이든 생산성의 차원이든 긍정적인 관점에서 고려되지 않고 상대의 추월을 허용할지 모르는 불안한 사건이 된다. 이렇게 우리가 불안에 잠식되게 되면 시간은 낮과 밤의 구분이 없어지고 주중과 주말의 차이가 사라지고 노동과 휴식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그 결과 우리는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무기력한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노자는 욕망을 자기 자신이나 외부로 꼭 드러내야만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니 욕망을 표출하는 순간부터 스스로를 규제해 자신을 괴롭히는 역설에 놓인다고 말하고 있다. 즉 잠을 자려는 나에게 ‘지금 잠을 자도 되는 거야?’라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욕망을 찾아내서 그 욕망을 표출하는 것만이 나의 정체성을 이루지 않는다. 그 욕망은 나의 전부가 아니라 나의 일부일 뿐이다. 모든 것을 일과 성과로 따지는 마음의 습성을 내려놓고, 숲과 강을 거닐며 아무런 생각 없이 하늘을 바라보자. 무척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 시간이 오래 지속됐으면 한다. 이렇게 욕망을 찾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 시간도 온전한 나를 지탱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된다. 드러내려는 나를 잠시 내려놓고 드러날 수 없는 나를 그대로 둔다면 무더운 여름날 잠을 쉽게 청할 수 있을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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