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미 보수매체 폭스뉴스 회장인 로저 에일스(76)가 연이은 성추문 속에 불명예 사퇴했다.
폭스뉴스의 모회사인 21세기 폭스는 에일스가 폭스뉴스·폭스비즈니스네트워크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폭스TV방송 회장직에서 즉각 사퇴한다고 21일(현지시간) 공식발표했다. 에일스의 후임이 정해질 때까지 폭스뉴스의 회장 겸 CEO 역할은 21세기 폭스의 CEO이자 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85)이 대행할 예정이다.
에일스는 지난 1996년 폭스뉴스를 창설, 뉴스 보도와 보수적인 토크쇼를 합친 독자적인 모델을 구축하며 지난 20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매체로 성장시켜 왔다. 머독은 이날 에일스가 “지난 20년간 우리 회사와 미국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며 “독립적이고 위대한 TV 채널에 대한 시각을 함께 공유하고 이를 잘 실행했다”고 평가했다,
보수파의 시각을 대변하는 폭스뉴스를 진두지휘한 에일스는 단순한 언론계 거물을 넘어 워싱턴의 정가의 조류를 움직일 만큼 보수 정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물로도 알려졌다.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에일스를 “현대 보수주의를 창조”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전현직 여성 앵커들로부터 상습적 성희롱의 혐의가 잇달아 제기되면서 그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 6일 폭스뉴스의 전직 앵커인 그레천 칼슨(50)이 상습적인 성희롱을 당했다며 에일스 회장을 상대로 뉴저지 주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몰락하기 시작한 그는 현재 간판 앵커인 메긴 켈리의 추가 성희롱 증언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미 언론들에 따르면 머독 일가는 그에게 8월 1일까지 사퇴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으며, 결국 에일스가 현금 보상을 챙기는 대신 자진 사임하는 형태로 사태가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각에서는 그가 사퇴한 진짜 이유가 머독 일가와의 불화 및 사업 비전에 대한 견해차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IT 전문매체 리코드는 21일 “지난해 루퍼트 머독으로부터 21세기 폭스의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물려받은 그의 두 아들 제임스 머독과 라클런 머독이 에일스를 성 추문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자신들의 오랜 장애물이었던 에일스 회장을 제거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경립기자 kls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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