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탈퇴, Brexit)로 인해 영국을 교두보 삼아 유럽 시장을 확대하려던 중국의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영국의 총리가 바뀌면서 그동안 구축해온 영국·중국 밀월관계가 삐걱거리는데다 유럽연합(EU) 내 유력한 조력자를 잃어버리며 EU와 중국 간 무역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30일(현지시간) 지난 2010~2015년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에서 테리사 메이 총리와 함께 일했던 빈스 케이블 전 산업장관은 BBC 등에 출연해 ‘힝클리포인트 원자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 계약 체결을 돌연 연기한 것이 메이 총리의 안보 걱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메이 총리가 (전임 캐머런 정권에서) 대중 투자 유치에 지나치게 열을 올리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며 “당시에도 메이 총리는 힝클리 프로젝트에 반대 목소리를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힝클리 프로젝트는 프랑스의 전력공사(EDF)와 중국의 국영 광핵그룹(CGN)이 180억파운드의 건설비를 2대1의 비율로 부담해 영국 서머싯주 힝클리포인트에 원전 2기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오는 2025년 사업이 완료되면 영국 내 전력수요의 7%를 담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영국에서는 캐머런 전 총리가 유지했던 친중 노선에서 본격적인 전환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일고 있다. 힝클리 프로젝트는 지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문에 맞춰 중국 국영 광핵그룹이 참여 계획을 발표하는 등 중국과 영국의 ‘황금시대’를 상징하는 사업으로 꼽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 집권 보수당 보좌진의 말을 인용해 메이 총리가 취임 후 캐머런 전 총리의 정치적 유산을 청산하고 있다며 “이번 변화는 새 정부가 들어섰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국이 EU에서 발언권을 상실하면서 EU와 중국 사이의 무역분쟁도 격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앞서 29일 EU 집행위원회는 중국산 건설용 고성능 콘크리트 보강 철근(HFP rebars)에 향후 5년간 18.4~22.5%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올해 1월 발표한 예비관세율보다 상향 조정된 것이다.
EU의 결정에 대해 중국 정부는 크게 반발했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EU가 불공정하게 유럽 철강 생산업자들에 더 높은 이윤을 남겨주기 위한 새로운 관세를 부과했다”며 “최근 (자유무역 증진을 약속한) 상하이 주요20개국(G20) 통상장관회의가 끝난 후 유럽 보호무역주의자들의 움직임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곳곳에서 중국과 유럽의 파열음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중국의 대유럽 정책 수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총리 교체와 EU 탈퇴 협상 본격화로 지금의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는 게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은 중국계 자본을 적극 유치해 자국 경기를 부양하려는 캐머런 정부와 정치적으로 ‘윈윈’ 하며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 외교가 소식통을 인용해 “기존 영국 지도부는 항상 그들이 서방국들과 EU에서 중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해왔다”며 “브렉시트는 중국에 매우 나쁜 소식”이라고 전했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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