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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탄생 100년] 5부. 인간 정주영 <2> 못다한 정치의 꿈

5공 청문회서 모멸감… "직접 나라 바꾸겠다" 현실정치 뛰어들어

079698-정주영 후보 무개차 타고 유세장 입장
정주영(왼쪽) 국민당 대통령 후보가 이종찬 의원과 함께 무개차를 타고 부산유세장으로 입장하며 청중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1992년 통일국민당 창당… 총선에서 31석 확보 '돌풍'

YS와의 후보 단일화 일축

대선 완주끝 3위 그쳤지만 '반값아파트·소득2만弗' 등

경제공약으로 여전히 명맥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글로벌 무대를 호령하는 기업을 일군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탄생 100주년을 맞은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될 만큼 대한민국 경제사(史)에 한 획을 그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런 정 회장에게도 못다 이룬 꿈이 하나 있었다.

정 회장은 기업인으로서 전인미답의 영토를 개척한 그 힘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설계하고 제시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었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정 회장은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창당했고 직접 총선을 진두지휘했으며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다.

기존 정치판의 구태를 일신하고 국민과 함께 대한민국호(號)를 이끌어보겠다는 그의 야심은 안타깝게도 14대 대선 낙선으로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기업인을 향한 정치권의 공세에 환멸을 느낀 뒤 곧장 인생행로를 바꾼 정 회장의 결심은 비리와 꼼수가 판치는 정치판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20여년이 흐른 현재 6남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가 여전히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에 정 회장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정 회장이 정치참여를 직접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지난 1988년 5공 비리특위 청문회였다. 헌정 사상 최초였던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정 회장은 감당하기 힘든 굴욕을 당했다.

스스로는 신군부에 맞서 정당한 방식으로 사업을 영위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국회 청문회에서 의원들로부터 정치자금과 관련해 집중 추궁을 당하면서 씻기 힘든 상처를 입은 것이다.

인생에서 전에 없던 모멸을 느낀 그 순간 정 회장은 '내가 정치지도자가 돼서 나라를 바꾸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92년 정 회장은 통일국민당을 창당한 뒤 총선에서 31개 의석을 확보한다. 모두가 깜짝 놀랄 만한 결과였지만 그의 시선은 그해 말에 열리는 대선을 향해 있었다.

정 회장은 아파트 분양가를 절반 이하로 떨어뜨리는 '반값아파트' 공약을 내놓는가 하면 집권 1년 안에 국민소득을 2만달러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까지 제시하며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산업계를 넘어 한반도 전체가 '정주영 신화'로 뒤덮일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덩달아 커졌다.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익숙한 이들은 김영삼·정주영 후보의 단합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정치경험이 일천한 만큼 일단 김영삼 후보 편에 선 뒤 다음 기회를 노리지 않겠느냐는 예측이었다.

물론 정 회장은 정치인을 꿈꾸면서도 이 같은 정치논리는 단박에 일축했다.

"나라가 망해가는데 밀실에서 대권 흥정이나 벌이는 사람은 통치자의 자격이 없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야합을 은근슬쩍 타진하는 민자당을 향한 일갈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대의(大義)보다 밥그릇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논리에 물들지 않겠다는 자기최면이기도 했다.

적당한 타협조차 경계하는 지독한 결벽주의가 독이 됐을까. 결과적으로 그는 16.8%의 득표율로 김영삼·김대중 후보에 이은 3위에 그쳤다.

분명 '정치 초짜'의 데뷔 무대치고는 훌륭한 성적표였지만 14대 대선을 마지막으로 짧은 정치인생을 마감했기에 이는 두고두고 아쉬운 결과일 수밖에 없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출신으로 오랫동안 정 회장을 보필했던 한 측근은 "원래 지나간 일은 되돌아보지 않는 성격인데 정치인으로서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서는 틈날 때마다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고 전했다.

어렸을 때의 경험도 정치참여의 원인이 됐다. 정 회장이 정치에 눈을 돌린 직접적인 계기는 5공 청문회였지만 유년시절의 기억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주변 지인들의 전언이다.

어린 시절 정 회장은 유독 나폴레옹과 칭기즈칸·링컨 등 위인들의 전기를 반복해 읽으며 지도자의 DNA를 체득했다.

직원들이 두려움 때문에 과감한 모험을 꺼리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정 회장이 '이봐, 해봤어?'라며 호통을 친 것도 나폴레옹 전기(傳記)에서 읽었던 '불가능은 없다'라는 글귀가 강렬한 기억으로 뇌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치인으로서의 정주영은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그의 경제공약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반값아파트는 보금자리 아파트가 됐고 국민소득 2만달러는 숫자만 바뀐 채 국민소득 4만달러론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는 어렵고 서민은 힘들다. 또 다른 의미에서의 정치신인이 필요한 게 아닐까. /나윤석기자 nagija@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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