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직을 떠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직사회에서 ‘다거(큰 형님·大哥)’로 불린다. 구조조정 등 난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경제관료들은 두둑한 배포와 포용력으로 후배를 아우르던 그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는 재직시절 후배 관료들이 감기에 걸렸다고 입 한번 못 뗄 정도로 엄한 상사였다. “1년 동안 소금물로 양치했나”라고 물으며 오히려 후배의 게으름을 추궁했다. 부지런한 공무원은 나랏일 한다는 사명감으로 미리 매일 소금물로 양치하며 감기를 예방한다는 게 윤 전 장관의 설명이다. 그는 멋쩍은 듯 웃으며 “내가 독한 사람은 아닌데 그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공무원 박봉에 대한 불만도 마찬가지다. “돈을 벌겠다면 공무원 하지 말았어야죠. 누가 시켜서 공무원 했답니까. 돈과 권력·명예 중 오로지 명예를 추구하는 게 공직자의 덕목입니다. 그게 싫으면 그만둬야지요.” 그의 공직관은 추상(秋霜) 같다.
그러나 윤 전 장관의 후배 공직자들에 대한 공감과 걱정은 어느 선배보다 깊었다. 후배들이 어려운 상사였던 그를 여전히 따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특히 세종시 이전에 따른 공무원 사회의 동요에 대해 크게 걱정했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후배들 보면 가슴이 아파요. 공무원도 직업인인데 하루 두 시간씩 왔다 갔다 하고 가족들 떨어져 있으면 당사자나 가족들의 삶의 질이 어떻게 되겠어요. 그 고충을 너무 뻔히 아니까 쓴소리도 못하겠습니다.”
윤 전 장관은 행정부의 세종시 이전이 능력 있는 공무원들의 탈출로 이어지고 결국 행정의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우려했다. “글로벌 시대에 외국 유력인사가 서울에 오면 세종시에 가는 줄 아십니까. 안 갑니다. 공무원만 서울로 오가느라고 길에서 시간을 다 버리지요. 그러니 예전에는 민간에 있던 인재가 공직자로 왔는데 세종시로 내려간 후에는 공무원들이 못 살겠다면서 민간으로 많이 전직했어요. 민간과 공공 분야의 인재가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민간으로 몰려 있으니 걱정입니다.”
공공 분야의 불안정성은 국가 경쟁력 추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조선시대에도 광화문 앞 육조거리에는 관청이 모여 있었잖아요. 지금도 모든 부처가 모여 있어서 10분 내로 회의하고 국민도 걸어서 모든 관청을 방문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청와대는 북한산 밑에 있고 광화문·과천·대전·세종·오송까지 여섯군데로 흩어져 있는데 어떻게 행정 생산성을 기본으로 한 국가 경쟁력을 담보합니까. 수도를 옮겨서 성공한 나라는 지구상에 없어요.”
윤 전 장관은 큰 형님답게 정치권에도 공무원을 대표해 한마디를 던졌다. “행정부를 세종시로 가도록 했던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국사를 제일 많이 논의하는 국회가 세종시로 가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행정부를 가게 만들었으면서 왜 자신들은 안갑니까.”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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