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가 볼이 묻히는 모래네요. 그린 주변은 괜찮은데 페어웨이 벙커가 아주 어렵겠어요.”
지난 6일(이하 한국시간) 리우 바라다티주카 지역의 올림픽 골프코스. 처음으로 코스가 개방된 이날 이른 아침부터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최경주(46)였죠. 1주일 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대회에서 공동 22위에 오를 정도로 여전히 ‘쌩쌩한’ 현역입니다. 이번 올림픽에는 남자 대표팀 코치 자격으로 참가하게 됐죠.
이날 연습 라운드엔 브라질·스위스 등 일부 나라 선수만이 가볍게 연습 라운드를 돌았습니다. 경기는 오는 11일부터라 아직 여유가 있어서인지 미국 투어에서 뛰는 유명 선수들은 물론이고 각 팀 코치도 없었습니다. ‘굳이 왜 이렇게 일찍 리우에 들어왔느냐’는 물음에 ‘최 코치’는 “정성이죠”라며 빙긋이 웃었습니다.
“자, 한 번 돌아봅시다.” 기자는 최 코치와 함께 18홀을 모두 걸으며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선수만 직접 쳐보며 돌아볼 수 있다는 규정 탓에 그는 빈 손으로 코스를 돌아야 했죠. 그가 골프클럽을 들지 않고 코스 점검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싶습니다.
최 코치는 넉살 좋게 스위스 선수에게 골프볼을 빌리더니 벙커에, 그린 주변에 이리저리 던져보며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시험해봤습니다. 덤불을 일일이 만져가며 누운 방향과 엉킨 정도를 파악해 바람의 습성을 읽는가 하면 ‘벙커샷의 달인’답게 볼을 던져보자마자 모래의 성질을 알아내더군요. “바다를 낀 링크스 코스의 전형적인 특성을 가졌는데 링크스에는 없는 워터해저드가 많네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에요.” 최 코치는 “페어웨이에 잘 떨어뜨려 놓아도 대부분의 홀이 물 쪽으로 경사가 심해 왼쪽으로 당기는 샷이 나오면 위험하겠다”며 드로 구질인 안병훈(25)을 걱정하기도 했죠.
지카 바이러스의 위험이 가장 높은 곳이 올림픽 골프코스라는데 그는 일행이 건넨 모기퇴치제를 ‘칙’ 한 번 뿌리고는 그냥 돌려줬습니다. “이런 강한 바람에 어느 모기가 가만히 앉아서 피를 뽑겠어요.”
18홀을 다 돌기 전에 국제골프연맹(IGF)이 정해놓은 제한시간이 지났지만 최 코치는 기어이 마지막 홀까지 점검하고 나서야 코스를 떠났습니다. 리우의 따가운 햇볕을 모자 하나로 맞선 때문인지 안 그래도 검은 그의 얼굴은 완전히 검어진 듯 보였습니다.
최 코치는 햇볕이 더 따가워진 7일에도 18홀을 돌아봤답니다. 출전선수인 안병훈과 왕정훈(20)이 곧 입국하면 자신이 파악한 모든 것을 전수해주겠다고 하더군요. 남자골프는 금메달 강력 후보인 여자골프에 비해 메달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 코치가 실천한 ‘정성’ 때문이라도 깜짝 메달이 나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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