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찬(23·현대제철) 선수는 1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양궁장에서 열린 남자개인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낸 순간 한달음에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에게 다가가 그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줬다. 그러고는 구 선수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회장님, 이게 4번째 금메달입니다”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정의선 회장은 “고맙다”면서 구 선수를 힘껏 껴안았다.
양궁선수단은 대한민국 양궁 역사상 첫 전 종목 석권이라는 위업을 든든히 뒷받침한 정의선 회장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가장 먼저 정 회장을 헹가래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저는 뒤에서 돕는 입장이었고 선수와 감독, 코치진의 고생이 정말 많았다”며 쑥스러워했다. 이를 지켜본 체육계의 한 관계자는 “32년간 비인기 종목을 묵묵히 지원해온 현대자동차그룹과 양궁계의 두터운 신뢰와 애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한국 양궁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전 종목 석권의 위업을 달성하면서 현대차그룹의 대(代)를 이은 양궁 사랑도 금빛 과녁을 명중시켰다.
14일 현대차그룹과 대한양궁협회 등에 따르면 정몽구 회장이 지난 1985년 양궁협회장에 취임한 이후부터 올해 양궁협회장에 재선임된 정의선 부회장이 재직해온 32년간 올림픽 양궁 종목에서 총 39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금메달만 23개에 달하고 은메달과 동메달이 각각 9개, 7개다. 특히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여자단체전 8연패와 전 종목 석권이라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세웠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이 우수 인재 발굴과 첨단장비 개발, 양궁 인구 저변 확대 등에 투자한 금액은 무려 450억원을 훌쩍 넘는다.
현대차그룹의 대를 이은 양궁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1984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으로 재직하던 정몽구 회장은 LA올림픽에서 여자양궁선수들의 선전을 지켜본 뒤 양궁 육성을 결심하고 이듬해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현대정공에 여자양궁단을 창단한 데 이어 현대제철에는 남자양궁단을 만들었다. 정몽구 회장은 1997년까지 양궁협회장을 4연임하며 체육단체에서는 최초로 스포츠 과학화를 추진, 스포츠 과학기자재 도입 및 연구개발 등을 통해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았다.
정몽구 회장의 양궁 사랑은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으로 대물림됐다. 정의선 부회장은 2005년부터 부친에 이어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아 양궁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펼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무엇보다 명성이나 이전 성적보다는 현재의 실력으로만 국가대표가 될 수 있도록 공정한 시스템을 확고하게 정착시켰다. 양궁 국가대표가 되려면 7개월 동안 5차례의 선발전을 통해 약 4,000발을 쏘아 3위 안에 들어야 한다. 종종 선수들의 훈련장을 찾아 격의 없이 식사를 하며 격려하고 주요 국제경기 때마다 현지에서 직접 응원을 펼치며 힘을 북돋우고 있는 정의선 부회장은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이 시합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경기장 인근에 물리치료실과 샤워실을 갖춘 트레일러 휴게실을 마련해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하고 경기장 이동도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사설 경호원을 고용하는 한편 방탄차도 제공했다.
현대차그룹은 ‘통 큰 포상’을 통해 양궁선수들의 노력과 성과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1986년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주요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양궁선수단과 코치진에게 총 60억여원을 포상금으로 지급했다.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둔 리우올림픽 선수단에도 10억원이 넘는 포상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정의선 양궁협회장은 구 선수의 금메달이 확정된 뒤 가진 인터뷰에서 “4관왕을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접하게 돼 기쁘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높은 목표를 가지고 달려온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양궁 발전을 위해 뒤에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 리우데자네이루=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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