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인물이나 목적을 위해 시(詩)를 써서는 안 됩니다. 시를 써야 한다는 절실함으로 오늘의 삶을 온전히 담아야 진정한 시라고 할 수 있어요.”
등단 60주년을 맞아 스스로 현역 시인이라 당당히 말하는 원로시인은 현실과 동떨어진 시는 쓰지 말라고 잘라 말한다. 노(老)시인에게 순박하고 서정적이기만 한 시는 무의미한 창작물일 뿐이다.
신경림(80·사진) 시인(동국대 석좌교수)은 최근 서울 서초 반포도서관에서 열린 문화강연에서 “다른 사람의 요구에 따라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를 섞어 쓴 시가 무수히 많은데 이는 절대 좋은 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시인이 처녀작 ‘갈대’ 를 발표한 때가 지난 1956년 갓 스무 살 때다. 전쟁 직후 폐허가 된 나라와 온갖 사회 부조리를 한탄한 그는 희망 없는 곳에서 시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생각에 시 쓰기를 그만두고 고향 충주로 낙향했다. 절필은 10년간 지속됐다.
그가 펜을 다시 잡도록 한 것은 현실에 뿌리 박은 시를 써야겠다는 절실함이었다. 1970년대 초 농민의 한과 고뇌를 그린 ‘농무’ 등이 이때 발표됐다. 시인은 “1960~1970년대 군사정권의 감시와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대 변혁의 열망을 담기 위해 저항시에 열중했다”고 회고했다.
나이 30대 후반 민족운동에 심취해 민요시를 10년여간 공부했지만 시가 어려워지고 민족 정서를 담겠다는 목적이 앞서면서 오히려 창작 의욕은 떨어졌다.
시인은 “타인의 바람에 따라 시인 자신이 갇힌 채 쓰는 시는 결코 좋은 시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며 “시 스스로 자연스러움 속에서 빛나도록 써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시인은 2000년대 중반 6~7차례 방북하면서 평양에서 활동하는 북한 시인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작품집 20~30권을 연구했다. 그는 “그 많은 시 가운데 단 한 편의 좋은 시도 발견할 수 없었다”며 “온통 통치자와 노동당만을 위해 쓴 시였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현실 직시는 시인에게도 필요하다고 신 시인은 단언했다. 그는 “대학에서 스승으로 모신 동탁 조지훈, 미당 서정주의 아름다운 시들을 좋아하지만 항상 1% 부족함을 느낀다”며 “시가 현세대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인 역할론을 강조했다. 시인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세상을 보고 그것을 통해 독자들이 새롭게 느끼고 활기차게 살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 그는 “이미 누군가 했을 법한 소리, 뻔한 얘기는 읽기 싫은 시”라고 지적했다.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 새겨진 시조차도 무의미한 미사여구의 나열이나 읽기 쉽게만 쓰인 것이 많은데 시인의 눈에는 그저 재미없는 답답한 시일 뿐이다. 시인은 “좋은 시를 쓰고자 한다면 먼저 세상의 새로운 색깔을 찾는 데 열중해보라”고 조언했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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