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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골든슬램...'돌부처' 박인비도 만세를 불렀다

올림픽 준비하며 스윙교정 "계속 진화해야 한다"

"도쿄 올림픽요? 그때까지 골프하면 목표삼을 것"

20일(현지시간) 오전5시에 기상해 골프장에 나간 박인비(28·KB금융그룹)는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강풍에 대비한 샷을 가다듬었다. 잠시 뒤 치를 경기가 골프 역사를 넘어 스포츠사에 길이 기억될 18홀이 될지 그는 예감하고 있었을까. 남편이자 코치인 남기협씨가 던져준 골프볼을 박인비는 유독 강하게 움켜쥐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이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올림픽 골프코스(파71·6,154야드)에서 끝난 리우 올림픽 여자골프에서 박인비는 2위를 5타 차로 따돌렸다. 이전까지 프로 데뷔 후 가장 큰 타수 차의 우승이 5타 차 우승이었다. 올 초부터 이어진 왼손 엄지 부상에다 올림픽 출전을 강행하며 짊어진 엄청난 중압감 속에서도 데뷔 후 가장 압도적인 우승을 이뤄낸 것이다.

박인비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대회 3연속 우승(2013년), 4대 메이저를 석권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2015년), LPGA 명예의 전당 입성(2016년) 등으로 이미 골프계에선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더 이룰 게 없을 것 같던 그는 116년 만에 부활한 올림픽 여자골프에서마저 금메달을 따내며 스포츠계 전체에서도 전설로 남게 됐다. 한국 선수단의 이번 대회 9번째이자 마지막 금메달이기도 했다.

4대 메이저 석권에 올림픽 금메달마저 목에 거는 ‘커리어 골든슬램’은 남녀 골프를 통틀어서도 박인비가 최초다. 박인비는 “지난주 테니스에서 얘기가 나오는 것을 듣고 골든슬램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저도 이루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주인공이 되니 믿기지 않는다”며 “2·3라운드에 선두로 가고 있을 때도 마지막 날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까 의심돼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제 골프선수로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열려온 테니스에선 커리어 골든슬래머가 역대로 4명 배출됐다.

이날 최종 4라운드가 시작되기 전 단독 선두 박인비와 공동 2위 리디아 고(뉴질랜드)의 타수 차는 2타였다. 올 시즌 LPGA 투어에서 리디아 고가 4승을 수확하는 사이 박인비는 컷 탈락과 기권이 총 5차례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매 라운드 뒤 손가락에 얼음찜질을 하며 버텨왔던 박인비는 그러나 예상을 깨고 초반부터 치고 나가 독보적인 레이스를 펼쳤다.

박인비가 3~5번홀 세 홀 연속 버디로 기세를 올리는 동안 같은 조의 리디아 고는 보기 1개로 타수를 잃어 둘의 격차는 순식간에 6타로 벌어졌다. 후반 들어서는 새로운 경쟁자를 만났다. 박인비가 10번홀(파5) 티샷을 물에 빠뜨려 보기를 적는 사이 앞 조의 펑산산(중국)이 버디를 잡으며 치고 올라가면서 3타 차로 쫓긴 것이다. 박인비는 그러나 13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 보기를 범한 펑산산과의 차이를 5타로 벌리면서 우승을 예약했다. 박인비는 이날 버디 7개에 보기 2개로 5타를 줄여 최종합계 16언더파로 마쳤다. 은메달 리디아 고(11언더파)와 동메달을 딴 펑산산(10언더파)은 나란히 2타를 줄이는 데 그쳤다.

박인비는 힘들 때면 더 힘을 내왔다. 지난해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마지막 퍼즐을 맞출 때도 극심한 허리 통증 속에 마지막 날 7언더파를 몰아쳐 역전 우승했다. 이번엔 손가락 통증에다 이전엔 겪어본 적 없는 무서운 부담감 속에서도 우승을 지켜냈다.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던 박인비를 두고 일부에선 ‘출전권을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박인비는 “잘 못 치면 제게 돌아오는 것이 뭔지는 뻔하게 정해져 있었다. 그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정말 큰 용기였다”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포기는 비겁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못 칠 수도 있으니까, 혹시 욕먹을 수 있으니까 포기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박인비는 올림픽 금메달을 “제 한계를 넘고 나서 받은 보상”이라고 했다. 그 때문일까. 평소 우승에도 담담해 돌부처로 잘 알려진 그였지만 이날 마지막 퍼트를 넣고는 양팔을 쭉 뻗은 채 고개를 젖히는 큰 동작으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정말로 더 이룰 게 없어진 박인비지만 아직 골프를 놓을 생각은 없다. 박인비는 “지난 한 달 정도 올림픽을 위해 ‘이 정도로 연습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다. 이 과정이 골프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아직은 새 스윙이 몸에 익지 않아 계속 진화해야 한다”고 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도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박인비는 “그때까지 골프를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도쿄 대회 출전이) 더 큰 목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양희영(27·PNS창호)은 동메달 펑산산에 1타 모자란 9언더파 공동 4위로 돌아섰고 전인지(22·하이트진로)와 김세영(23·미래에셋)은 각각 5언더파 공동 13위, 1언더파 공동 25위로 마쳤다.

/리우데자네이루=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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