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말로 예정된 결전을 앞두고 후보들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깜짝 후보는 없다.’ 오는 2017년 12월 치러질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미국 공군의 차기 훈련기(T-X) 수주 경쟁 얘기다. 지난 1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에 건설된 비행장에서는 날렵한 제트기 한 대가 지상 활주 시험을 치렀다. 노스롭그루먼-BAE 컨소시엄이 T-X 결전장에 내보낼 ‘모델 400기’가 첫선을 보인 것이다.
모델 400의 형상이 공개됨으로써 수주 경쟁을 치를 4개 회사 가운데 3개사 후보기의 형상이 알려졌다. 두 개 컨소시엄의 후보기는 사업 초기 단계부터 공개된 상태. 한국항공우주산업(KAI)-록히드마틴의 T-50A와 레이시온-알레니아아에르마키의 T-100(M-346)은 이미 실전 배치되고 세계 각국에 수출까지 이뤄져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반면 나머지 두 개 후보기는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시제기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후보기를 일찌감치 링에 올린 두 개의 컨소시엄은 물론 세계 각국은 나머지 두 개 컨소시엄이 얼마나 혁신적인 훈련기를 내놓을지 기다렸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노스롭그루먼사의 후보기 모델 400의 외형은 평범하다. 혁신적 설계가 눈에 띄지 않는다. 심지어 미 공군이 50년 넘게 훈련기로 사용하는 T-38(한국 공군 F-5 시리즈와 공동 기체)과 큰 차이가 없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기수와 조종석만 일부 공개된 보잉-사브의 후보기도 평범한 외형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고만고만한 외양을 가진 노스롭그루먼과 보잉의 후보기가 성능도 뛰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더욱이 노스롭그루먼사 모델 400기의 엔진에 애프터 버너가 없어 T-50A보다 출력이 다소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시제기를 이제 겨우 내놓은 마당에 내년 안에 모든 비행 시험을 마칠 수 있을지에 의문을 보내는 시각도 있다. 이 같은 의문들이 지향하는 방향은 한곳이다. KAI의 T-50이 우위라는 희망이 배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용. 평범한 기체에 첨단 복합소재와 광섬유를 이용한 비행 제어 장치 등 새로운 기술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경우라면 오히려 T-50이 불리할 수도 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미 계약이 성사됐어야 할 T-X 프로그램이 수차례 연기된 것은 예산 탓이지만 결과적으로 후발 미국 회사들이 첨단 기술을 집어넣을 시간적 여유를 누리게 된 셈이다.
미국 공군은 내년 말 기종을 정하고 2018년 초 납품 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1차 물량만 350대. 2차로 150대가 추가되고 미국 해군용 500대도 T-X 기종이 맡을 수 있다. 미국 외 수요도 500여대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T-X 사업 1차 입찰의 승자가 이 모든 물량을 독식할 가능성이 크다. 주요 경쟁자들의 후보기가 베일을 벗었다는 점은 수십조 원의 황금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고편만 상영되던 T-X 수주 전쟁의 제1막이 개막한 것이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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