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코리아는 외국인투자기업으로서 배출권 거래제를 활용해 수익을 내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경남 창원 산업단지에서 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생산하는 이 업체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전기 사용을 줄이는 것이 지상과제였다. 그래서 작년에 약 5억원을 들여서 공장에 있는 공기압축기, 용접기 등 전기 설비에 대해 세계적 수준의 자동모니터링 시스템을 설치했다. 이 시스템 덕분에 유휴 시설의 전기를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되었고 전력 소비는 약 7% 감소했다. 덕분에 온실가스 배출도 1,300톤이 저감돼 올해는 약 800톤의 배출권을 시장에 팔기까지 했다. 그 수익은 다시 온실가스 감축 투자를 위해 사용될 계획이라고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투자를 이끌어낸 사례도 있다. 동아볼트는 현대제철에 볼트를 납품하는 중소 협력업체다. 이 중소기업은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해 공장 조명을 LED로 교체하고 싶었는데 비용이 문제였다. 이때 볼트를 납품받는 기업인 현대제철이 작년에 1억원을 들여서 동아볼트 공장 내에 LED 조명을 교체해줬고 덕분에 공장 1개 동에서 연간 50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LED 조명 교체는 배출권 거래제의 ‘상쇄사업’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현대제철은 조명 교체로 인한 감축실적 50톤을 동아볼트로부터 이전받아 배출권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그리고 조명 교체 지원을 여타 중소기업으로 확대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이처럼 배출권 거래제가 2015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된 후 새로운 형태의 수익모델과 투자가 등장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규제로 인식되던 배출권 거래제가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플랫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배출권거래제 1차년도에 대한 정산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는데 이 역시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력하면서 감축시설 투자를 병행한 것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하겠다.
정부는 지난 1년 반 동안 배출권 거래제를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투자를 제약하는 불합리한 규제를 적극 개선해 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LED 조명 교체 사례와 같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파트너가 되어 온실가스 감축과 친환경 시설 투자를 동시에 이끌어낼 수 있도록 상쇄사업을 활성화할 예정이다. 청정에너지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도 확대해 시장과 기술을 통한 감축이 이뤄지도록 기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기존 교토 체제와 달리 신(新) 기후체제에서는 선진국과 개도국이 모두 감축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배출권 거래제와 같은 시장메커니즘을 활용해 비용 효과적인 감축 수단을 발굴하고 기업의 투자를 유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배출권 거래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발 빠르게 경험을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신 기후체제를 ‘기회’로 활용하기에 유리한 여건을 갖춘 셈이다.
그리스 신화에 카이로스(Kairos)라는 ‘기회의 신’이 있다. 그런데 카이로스는 누군가에게 발견되었을 때 쉽게 붙잡힐 수 있지만 일단 지나가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다시 잡을 수 없다. 따라서 카이로스를 붙잡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우리 산업도 마찬가지이다. 신(新) 기후체제 출범까지 대략 3년 내외의 시간이 남아 있는데 이 기간 동안 기후변화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역량을 착실히 키워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배출권 거래제가 산업계의 다양한 투자를 유인하는 촉매가 되고 카이로스를 붙잡는 수단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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