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골적인 집값 부양에 나선 것 아닌가요. 신규 공급을 줄이면 그만큼 희소성을 가지게 되는 청약시장으로 사람들이 몰릴 텐데 분양권 전매 규제에 관한 내용은 없네요. 이 정도로 부동산 가격을 방어해주겠다는 입장이라면 주택을 매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지난 25일 정부가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주택공급 조절을 핵심으로 한 ‘가계부채 현황 및 관리방향’을 발표하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인터넷상의 주요 부동산 사이트들이었다. 정부의 이번 대책이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 서울경제신문이 대책 발표 이후 서울 강남권 등 주요 시장을 점검한 결과 발표 직후 문의전화가 늘고 호가가 오르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대책 발표 이후 호가 상승, 시장 들썩=26일 현지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주택물량을 조절하기로 결정하자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주택공급이 줄어들면 가격 상승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 매수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반면 매도자들은 매물을 거둬들이며 적정 가격을 재산정하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 들어 공급된 재건축 단지들의 연이은 흥행 성공으로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던 강남구 개포동 인근의 저층 재건축 단지들이 대표적이다.
개포주공4단지 인근 G공인 대표는 “7월 중도금 대출 규제가 이뤄졌을 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수요자들이 이번 발표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책이 발표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용 42㎡의 가격은 이미 2,000만원가량 상승했다”고 말했다. B공인 관계자도 “대책 발표 이후 문의전화가 더 늘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관리처분총회를 앞둔 강동구 둔촌주공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대책 발표 이전 전용 99㎡ 매물이 9억4,000만원에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8·25 가계부채 대책’ 발표 이후 집주인이 호가를 1,000만원가량 올려 계약이 미뤄졌다. 둔촌주공 단지 역시 대책 이후 문의전화가 늘고 있다.
송파구 지역도 비슷하다. 리센츠·트리지움 등이 위치한 신천역 인근 공인중개소에는 정부 정책이 발표된 뒤 문의전화가 증가했다. 공급 감소로 가격이 오른다는 기대감에 매도자들이 가격을 조금씩 올리는 분위기다.
안성용 우리은행 부동산팀 차장은 “가계부채를 잡겠다고 발표한 대책이 되레 부동산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2014년 정부의 택지개발촉진법 폐지로 대규모 공공택지 지정이 중단된 후 수도권 택지지구 아파트 가격이 급등한 것과 비슷한 현상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계부채 관리보다 공급물량 축소에 방점 찍혀=서울 강남권 일부 중개업소들은 정책이 공개된 직후 공급이 줄면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며 고객들에게 문자를 보내 빠른 매수를 권유하는 풍경도 나오고 있다.
시장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이번 대책이 가계부채를 관리하겠다는 원래 목표보다 공급물량 축소에 방점이 찍혔기 때문이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분양권 전매 제한이나 청약통장 기간을 늘리는 등의 직접적인 규제가 포함돼 있지 않은 탓에 시장에 미치는 규제의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부동산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오히려 부동산 투자자들은 공급물량 축소가 가져올 가격 상승 기대감에 환호하는 분위기다. 실제 부동산 관련 A사이트의 한 게시판에는 ‘이번 부동산 대책 결론은 부동산 매매 서둘러라군요’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한 시중은행 부동산 담당 팀장은 “그동안 부동산 시장의 불안요소는 크게 금리가 올라가는 것과 공급이 폭등하는 것 두 가지였는데 이번 발표로 한 가지 불안요소가 해결됐다”고 말했다./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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