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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필의 음악 이야기] 록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지난 8월 16일은 20세기 대중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한 지 39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의 음악은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적 인기를 끌었으며 로큰롤·가스펠·록·펑크·발라드·팝 등 대부분 장르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비틀즈, 마이클 잭슨과 함께 현재까지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1956년 1월 첫 싱글 ‘하트브레이크 호텔(Heartbreak Hotel)’을 발표, 단박에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며 세상에 알려졌다. 준비된 슈퍼스타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데뷔 전 평범한 트럭운전사에 불과했다. 가수로서의 길이 요원하기만 하던 어느 날 하다못해 자작 음반이라도 만들어 어머니에게 선물하려고 레코드회사를 찾아갔다가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다.

그의 눈빛부터 헤어스타일, 의상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섹시’한 매력과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다리 떨기와 같은 퍼포먼스에 젊은 층은 열광했다. 특히 엘비스가 위대하다고 평가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백인이 흑인 음악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데 있다. 당시에는 비주류 장르였던 로큰롤의 열풍을 주도하여 흑백 차별이 여전하던 시대에 음악으로 인종의 크로스오버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던 것이다.



그에 대해 좋은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데뷔 당시 미국의 보수적인 기성세대들은 그를 매우 싫어했다. 음악적 역량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그의 히트곡 중 본인이 직접 작사나 작곡에 참여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에서다. 그래도 그의 노래는 많은 음악인에게 영향을 끼쳤다. 비틀즈는 엘비스를 보며 로큰롤의 꿈을 키웠고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버디 홀리 등도 자신들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으로 엘비스 프레슬리를 늘 언급했다고 한다.

엘비스는 42세 한창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약물 과다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는 항상 많은 약을 챙겨 먹었다고 한다. 목소리를 보호하기 위한 약부터, 혈액 순환제, 변비약, 식욕증진제 등 다양한 약들을 먹고서야 하루를 시작했는데 매일 저녁 무대에 서기 전 다시 여러 약물을 복용했다고 한다. 화려한 무대와 현실의 간극을 약물에 의존하여 채우려 한 것처럼 보여 지금까지 팬들을 안타깝게 한다.

하지만 그는 사후에도 미국 대중문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꼽히는 상징으로 남았다. 그의 수많은 히트곡들은 이미 세계적 명곡의 반열에 올랐으며 앞으로도 대중을 기쁘게 해주는 음악으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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