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지 마라.’ 저승에서 아내를 구해오던 남자는 끝내 명령을 거스르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돌린다. 이승 문턱에 당도하기도 전 두 사람은 다시 이별을 마주한다. 그리스 신화이자 서양의 대표 오페라인 ‘오르페우스’가 판소리를 입고 창극으로 재탄생한다. 국립극장의 ‘2016∼2017 레퍼토리 시즌’ 개막작이자 국립창극단의 신작 ‘오르페오전’을 통해서다.
“오페라를 모방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음악극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창극과 오페라의 첫 만남’을 지휘할 이소영(사진) 연출은 31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오르페오전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서양 오페라보다 더 방대하고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감히 도전장을 냈다”며 “동양적 연출과 우리의 정신·문화를 녹여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 연출은 한국 1호 여성 오페라 연출가로 지난해 ‘적벽가’로 처음 창극에 도전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신화 속 ‘뒤돌아봄’이라는 키워드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한 공통 주제를 발견한 것이 ‘오르페오전’을 선택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한국의 장자못 설화에도 ‘뒤돌아보면 돌로 변한다’는 내용이 담겼고 누군가가 죽으면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지 않느냐”며 “이 작품의 주제인 뒤돌아봄은 동·서양의 경계를 넘어 삶과 죽음을 돌아보게 하는 공통적인 정서”라고 설명했다.
그간 호기심, 의지박약, 연인에 대한 애타는 감정 등으로 해석돼온 오르페우스의 뒤돌아봄은 이번 창극에서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순리를 지키기 위한 ‘자발적 선택’으로 새롭게 해석된다. 주인공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도 20대 초반의 올페와 애울로 바꿨다.
전통 ‘방패연’을 상징화한 감각적인 무대도 기대를 모은다. 이 연출은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방패연이 무대 중심에 놓인다”며 “‘배꼽’이라 불리는 구멍을 이승과 저승의 출입문으로 삼아 경사 무대와 회전 장치로 이승, 저승, 다시 돌아온 이승으로 표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호준 음악감독은 판소리 가창의 특성을 최대한 고려하되 장단을 과감하게 해체하고 기존 창극에서는 단독으로 행하지는 않았던 무용 음악을 넣어 극적 정서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올페 역은 국립창극단 단원 김준수·유태평양이, 애울 역은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로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인 이소연이 맡았다. 오는 9월23~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사진=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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