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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 '숙천제아도' 원본 첫 전시… 국보 '금동대탑' 3D영상 복원
정교한 경복궁·육조거리 모형도
天·地·人 품은 전통건축 재조명… 고미술·고지도 등 70여점 선봬
조선 말기의 문신 한필교(1807~1878)가 처음 벼슬길에 오른 때는 서른을 넘기던 1837년이었다. 전라도 장성부와 황해도 서흥부를 비롯해 오늘날 기획재정부에 해당하는 호조(戶曺)와 산업자원부 격인 공조(工曺), 한성의 종묘와 종친부까지 42년간 그가 부임했던 관아는 15곳이었고, 그는 이를 모두 그림으로 남겨 화첩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를 만들었다. 관청건물의 배치, 부임지 마을의 우물과 다른 마을로 이어지는 길까지 상세하게 기록돼 현재 사라진 옛 고을을 고증하기 위한 그림지도로 손색없다. 지금은 미국 하버드대의 97개 도서관 중 하나인 옌칭(燕京)도서관이 소장한 이 '숙천제아도'의 원본이 처음으로 국내 전시에 선보인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삼성문화재단 창립 50주년 기념전으로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전을 19일부터 열고 '숙천제아도'를 비롯한 한국 전통건축의 의미를 보여주는 사진과 고미술,고지도 등 70여 점을 선보인다. "우리 스스로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대해서는 알아도 서울 한복판에 있는 종묘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베르사유궁전의 바로크 양식은 예찬하면서도 아름답고 슬픈 역사에 대해서는 무심"하다는 이준 리움 부관장의 지적처럼 그간 눈여겨 보지 않았던 전통건축의 가치를 되새기는 보기 드문 귀한 전시다.
'동서고금이 교차하는 융합미술관'을 표방하는 리움답게 고건축과 신기술의 만남이 눈길을 끈다. 현재 5개층(155㎝)만 남아있는 10~11세기 고려 유물인 국보 213호 '금동대탑'은 3D 스캔방식으로 9층탑의 원형을 보여준다. 석굴암의 '신비'에 가까운 축조방식도 3D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2013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신라'특별전에서 선보였던 영상을 보완한 것이다. 전통모형업체 (주)기흥성이 1/200 축척 모형으로 제작한 흥선대원군 시절 경복궁과 육조거리의 모형 앞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지금의 광화문광장 주변인 이 모형도는 1880년작 '북궐도'로 경복궁을 재현하고 1907년의 지적도를 기반으로 육조거리를 재구성했다. 북악산과 관악산을 잇는 축 위에 법궁의 위엄을 살려 기하학적 질서로 자리잡은 경복궁이 돋보이며, 당시만 해도 빽빽했던 전각들이 이후 일제시대에 상당수 소실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폭이 6m에 달하는 국보 249호 '동궐도'는 창덕궁과 창경궁의 원래 전각배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동궐도에서는 창덕궁 후원 부용정 주변에 작게 그려진 옛 규장각을김홍도가 세밀하게 그린 '규장각도'로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전시는 크게 천(天),지(地),인(人)으로 나뉘어 △침묵과 장엄의 세계인 사찰건축과 종묘 △터의 경영, 질서의 건축인 궁궐·성곽·관아건축 △삶과 어울림의 공간인 민가건축으로 구분된다. 원로사진작가 주명덕의 해인사는 지붕과 소나무에 눈이 쌓인 설경이 운치있다.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인 서헌강은 불국사의 화려함과 장엄미를, 사진으로 한국적 미감을 잘 보여주는 구본창은 통도사의 구석구석을 섬세함과 열정을 담아 촬영했다. 거장 배병우는 전통 사찰의 원형을 간직한 선암사를 맡아 흑백사진으로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냈고, 도산서원(김도균)과 소쇄원(구본창) 등 몰랐던 우리 건축의 미감을 보여준다.
청소년들에게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고자 평일에 방문하는 청소년은 모두 무료관람이다. 일반 5,000원. 내년 2월6일까지. (02)2014-6901.
/조상인기자 ccs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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