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부자들’이라는 영화를 봤다. 언론과 권력, 그리고 재벌이 유착하는 네트워크의 힘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가에 대해 그린 작품이었다. 몇몇 장면들은 낯뜨겁고 거북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어딘가에 조금씩은 존재하는 단면들을 패치워크 식으로 모아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 산업에 국한된 게 아니라 힘이 있는 어느 곳에나 통용되는 공통 법칙 같은 느낌 때문인지 ‘아니 어떻게 저런 일이?’하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초(超) 자본주의 시대, 생명까지도 거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세상이니 여론과 권력, 그리고 돈을 매개로 한 네트워크를 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소하지 않은 건 당연한 걸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상당히 리얼리즘적이었으되 조금은 ‘클리셰’(cliche)같았다고 해야 할까.
이 영화 속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내부고발자’ 역할을 자임했던 주인공 안상구(이병헌 분)였다. 그는 원래 광주 깡패다. 그리고 정치 용역 깡패로 시작해 승승장구하다가 나이트클럽, 연예기획사, 그리고 재벌들의 채홍사 역할까지 떠맡은, 가히 ‘건달계의 풍운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누군가의 약점을 잡아 나중에 한 몫 단단히 잡아보겠다는 ‘귀여운 욕심’을 부렸다가 평생의 한(恨)을 안게 된 인물이다(‘그들’이 안상구에게 가한 보복이 무엇인지는 영화를 본 분들만이 알 수 있도록 남겨 두겠다). 그래서일까. 그는 치밀하게 계획하고, 또 주변 사람들을 동원하여 복수를 감행하려고 한다. 그러나 곳곳에 장애물이 있다. ‘깡패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들어줄 리 없는 세상의 시선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결국 안상구는 자신과 묘하게 얽혀 있는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의 역할을 빌어서 계획을 성공시켜야만 하는, 불완전한 인물이 된다. 공교롭게도 검사와 폭력배가 한 배를 타는 이상한 구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합은 어색하지 않다. 두 사람 다 주류가 될 수 없는 주변부 인생이라는 공통점 때문이었으리라. 치열하게 유능하게 살아 왔지만, 열정과 기지 만으로 출세할 수 없는 현실 또한 와 닿는다. 상층부에 있는 자들이 끊임없이 사다리를 걷어 차며 ‘개’로 머물게끔만 허락하는 환경은 과장됐을지는 몰라도 허구는 아니다. 대중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작품 속에 그렇게 스며있었다.
이쯤 되면 비리로 얼룩진 사회 지도층을 향해 날리는 ‘사이다 같은 한 방’을 관객들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용감하게 자신의 양심을 걸고 싸움에 나선 내부자들을 격려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관찰자 입장이라면 정의 구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 높이기 쉽다. 그러나 ‘우리 회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괜한 분란만 일으킨다고 손가락질 하게 되는 게 현실 아니던가. 옳은 말 하기 힘든 우리 사회의 차디찬 민낯은 언제쯤 달라질 수 있을까. 내 일이라도 ‘사이다 같은 한 방’을 응원하는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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