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기부금으로 1조원 규모의 농어촌 상생기금을 조성해 농업을 지원하겠다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대책이 각 언론으로부터 난타를 당하고 있다. 물론 도무지 현실성이 없는 이른바 무역이득공유제를 주장한 농민단체와 정치권, 그리고 이런 주장을 제대로 돌파하지 못하고 상생기금이라는 편법으로 피해 가려 한 정부 모두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판의 봇물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수십 년간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농업은 '그저 그 타령' '밑 빠진 독' '돈 먹는 하마'라는 등등 농업에 대한 구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연 한국 농업이 그렇게 구박받을 만큼 정말 초라하고 형편없는가.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후 농업의 노동 생산성은 연평균 4.8% 증가해 비농업 부문의 증가율 3.4%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은 모르고 있다. 국민 1인당 농지면적이 세계에서 가장 좁지만 쌀을 자급하고 채소·과일·축산물의 상당 부분을 자급할 만큼 토지 생산성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는 사실도 간과되고 있다. 그리고 농업생산의 대농 집중도가 지난 1995년 이후 무려 4∼7배나 높아질 만큼 구조 변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됐다는 사실도 대부분 모르고 있다.
또 부가가치 1단위 생산에 투입되는 농자재는 13% 감소했고 농기계 등 고정자본과 고용노동 투입량도 40%나 줄어들 만큼 생산 효율성이 향상됐다. 그뿐 아니라 시장에서는 수입 농산물과의 가격 차이가 몇 배나 될 만큼 국내산 농산물을 차별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농산물 수입이 70% 이상 증가하고 이에 대응해 국내 생산도 24% 늘어난 결과 농업의 가격 조건이 급격히 악화해 그런 한국 농업의 성과는 농가의 손에서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1995년 이후 농산물 가격은 27% 상승하는 데 그쳤으나 농자재 가격은 무려 126%, 농기계 가격은 95%, 소비자물가는 72%나 상승한 것이다. 그 결과 소비자 후생은 증가했지만 실질 농업총소득이 39%, 무려 9조6,000억원이나 감소해 도농 간 소득 격차가 급격히 확대됐다. 사정이 이러한데 농산물이 물가 상승의 주범이고 농업이 '그저 그 타령'이라고 구박하다니 안타깝다.
많은 사람이 농정은 나눠주기, 퍼주기에 안주해 농업을 망쳤다고 비판하고 구박한다. 과연 농정이 정말 경쟁력 향상을 등한시했을까. 도리어 지난 20년간 구조조정과 경쟁력 향상을 농정의 제일 목표로 설정했고 그런 비판이 있을 때마다 주눅 든 농정은 미래성장산업과 수출농업을 목표로 설정하고 더욱 구조조정과 경쟁력 향상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대부분 50세 이상으로 전직이 사실상 불가능해 농업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160만명의 농업취업자가 급격한 가격 조건 악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상황에서 국민 경제를 성장시키고 총수출을 늘리는 역할을 농업에 기대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국민들은 그보다는 수입 식품으로 도저히 대체될 수 없는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주고 다른 것으로 해결될 수 없는 아름다운 농촌공간을 제공해주기를 간절히 원하리라 생각한다. 또한 혹독한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농업이 160만명에게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해주는 것이 국민경제적으로 더 필요하지 않은가.
이러한 국민의 요구는 선진국일수록 강해 스위스 등 유럽 각국은 농업이 그러한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감시하는 데 농정 예산과 인력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도 연간 100조원이 넘는 예산을 농업에 쏟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난리를 통해 농민단체와 정치권은 정말 농가를 위한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 무리한 요구를 자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비농업계도 농업 문제와 농정의 실상, 그리고 농업의 존재 이유를 정확히 헤아려 근거 없는 비판과 구박으로 농정이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가지 않게끔 해야 한다.
이정환 GSnJ인스티튜트 이사장 전 농촌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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