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후 서양 학문에 의한 현상학적·유물론적 사고가 세계를 지배해 오늘날 인간은 자신의 주인인 마음을 잃어버린 채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엄청난 양의 지식을 손쉽고 빠르게 얻지만 배움과 삶을 별개로 여겨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넘쳐나고 있어요. 하늘과 마음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2500년 넘게 이어온 유학(儒學)에 그 답이 있습니다.”
40여년간 유학을 연구해온 이광호(67·사진)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과학적 사고를 내세운 서양 학문의 한계로 벌어지는 세계사적 문제의 해법은 마음에 대한 연구에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경제신문은 오는 28일 서울 정독도서관에서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라는 주제로 예정된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고인돌)’ 강연을 앞두고 강연을 맡은 그와 인터뷰를 가졌다. ‘고인돌’은 서울시교육청과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 운영하는 성인과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아카데미로 올해 4년째다.
이 명예교수는 “관념이란 이성적인 것으로 머릿속에 들어 있는데 정보가 바로 관념이다. 관념(정보)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 생산과 운용을 맡고 있는 마음의 실체를 가볍게 보게 된다”면서 “마음을 가볍게 여기면 사고의 깊이가 얕아지고 자신감이 없어져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게 된다. 마음을 중심에 두고 과학적 사고가 이를 뒷받침해야 개인이 행복하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세계를 주도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는 바를 깨우치고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지행(知行)의 학문인 유학에 답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어 “퇴계와 율곡, 두 사람이 한 나라의 사상을 확립하고 후학을 키워낸 것처럼 서양 학문으로 인한 폐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유학의 본질을 ‘아는(知)’ 사람이 나와야 한다”면서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을 거치면서 길을 아는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 이제 그 답을 깨우친 사람이 나오고 깨우친 바를 ‘실천(行)’하는 문화를 형성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학은 인류가 지닌 가장 깊은 사상으로 인간의 본성을 실현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며 “그러나 조선시대의 유학은 정치에 얽히면서 관념화해 타락하고 말았다. 학문으로서 지엽적인 폐단을 보였던 당시의 유학을 전부라고 치부해서는 곤란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천재형인 율곡이 현실주의자였다면 대기만성형의 퇴계는 이상주의자였다”며 “유물론(율곡)과 유심론(퇴계)을 주장한 두 성현의 사상이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2013년 퇴계와 율곡이 주고받은 편지와 시를 모아 번역한 동명의 책을 출간한 이 명예교수는 “두 학자가 등장한 지 400년이 넘었는데 왕래했던 편지와 시를 모아 번역한 건 처음”이라면서 “숙종 이후 권세를 잡은 율곡의 후학이 혹여 스승 율곡이 퇴계의 명망에 가려질까 하는 염려가 있었던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이어 “퇴계가 자기 수양에 힘썼던 철학자라면 율곡은 십만양병설 등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인의 성격이 짙어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그러나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시와 편지에 나타나 있듯이 35년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사상적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 존중했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제 두 성현의 사상을 올바로 이해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퇴계와 율곡에 대한 연구는 분단 이후 각기 다른 해석을 하고 있어 남과 북 모두의 과제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명예교수는 “북한에서는 도덕을 봉건주의적 관념으로 보고 퇴계를 보수반동분자로 규정하는가 하면 율곡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가까운 인물이라 평가해 ‘조선철학사’의 표지인물로 정해놓는 등 두 사람에 대한 연구는 남북 모두가 아직 미흡한 실정”이라며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의는 28일 오후7시 정독도서관 시청각실에서 열리며 신청은 정독도서관 독서문화진흥과(02-2011-5773)로 하면 된다.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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