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씨는 자신이 소유한 산지의 땅을 골프연습장으로 개발하기 위해 군청에 건축허가 신청을 했다.
하지만 군청은 지역 주민들의 반대 민원이 제기되고 지하수 수질 문제 등이 불거질 우려가 있다며 신청을 거부했다. 이에 김씨는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 1년 가까이 이어진 소송 끝에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군청은 판결에 따라 대부분 땅에 대해 개발 허가를 내줬으나 일부 산의 땅에 대해서는 다시 허가신청서를 내라고 요구했다. 김씨가 신청서를 내자 “주민들의 반대가 우려된다”며 또 신청을 불허 했다.
행정소송은 “행정청의 처분을 바로잡아달라”며 내는 소송이다. 정부·공공기관의 잘못된 결정에 대한 개인의 권리 구제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행정소송은 제도상의 맹점으로 A씨 사례처럼 ‘반쪽자리’ 권리 구제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A씨의 권리가 제대로 구제되려면 거부 처분을 취소하는 데서 나아가 실제로 건축 허가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행정소송은 기본적으로 특정 처분에 대해 취소를 구하는 소송이다. 즉 법원이 어떤 처분을 ‘취소하라’고는 할 수 있어도 ‘이행하라’고는 못하는 구조다. 이렇다 보니 A씨처럼 소송에서도 이겨도 행정청이 또다시 허가를 해주지 않아 어려움이 계속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허가해줘라” 명령까지 포함
선진국은 ‘의무이행소송’ 운용
이런 점을 고려해 대부분 선진국은 ‘의무이행소송’이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법원이 잘못된 처분을 취소하는 동시에 ‘허가를 내 주라’ 등 이행을 명령하는 제도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은 물론 중앙정부의 힘이 막강한 중국조차 도입하고 있다. 의무이행소송 제도는 반복되는 거부 처분 사례뿐 아니라 행정청이 민원인의 신청에 별다른 이유 없이 응답하지 않는 경우에도 활용될 수 있다. 여러모로 개인의 권리구제 수준이 대폭 높아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 도입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07년, 2011년, 2013년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거나 입법예고 됐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행정부의 권한을 사법부가 침해하게 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중권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특정 처분을 할 의무가 법령상 명백한 경우에만 의무이행 판결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행정청이 재량을 행사할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판결 취지 안에서 자유롭게 다시 처분하도록 하도록 한다면 행정부 권한 침해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의무이행소송제도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축적됐고 대부분의 선진국도 도입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도입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권리 구제 강화 위해 꼭 필요”
대법도 연내 도입 추진하기로
다행히 대법원에서도 행정소송의 제도 맹점을 인식하고 의무이행소송 제도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무엇보다 일반인들의 권리 구제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의무이행소송제도는 꼭 필요한 제도”라며 “올해 안에 입법 발의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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