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은 한진해운에 추가 지원 불가를 결정하면서도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정반대다. 당장 국제 해상운임이 일부 구간에서 이미 50% 넘게 폭등하는 등 피해가 수출업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 각지의 터미널에서 입출항이 거부되거나 압류된 한진해운 선박이 늘어나고 있다. 3일 현재 입출항을 거부당하거나 표류하고 있는 비정상 운항선박은 무려 53척이다. 하루 새 8척이나 늘어났다. 체불된 미지불금 6,100억원을 해결하지 못하면 141척에 달하는 선박 모두 하염없이 바다를 떠돌아다녀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선박 압류 등에 따른 운항 차질로 줄소송도 우려된다. 현재 한진해운에 화물을 맡긴 업체는 전 세계 8,200여개로 한진해운이 최대 140억달러(약 15조6,000억원) 규모의 줄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미국 소매업체들이 현지 정부에 한진해운 사태 개입을 요청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한진해운 사태가 국내만이 아니라 글로벌한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기업회생 절차가 개시되거나 재산보전 처분이 이뤄지면 즉시 외국에서 승인을 받는 준비도 없었다. 단지 현대상선 선박 13척을 긴급 투입하는 것으로 후폭풍을 막을 수 있다고 본 안이함의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현대상선을 통한 한진해운 우량자산 인수 카드 역시 실효성이 없는데다 그 자체가 도산법 원칙을 어기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지적마저 제기된다. 해운업의 특성을 전혀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4일 부랴부랴 해양수산부에서 운영하는 한진해운사태비상대응반을 정부 합동대책 태스크포스(TF)로 확대 개편하고 9개 부처 긴급 점검회의를 개최한 것도 초기대응에 실패했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애초에 제대로 대응했다면 이런 비상사태를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를 대하는 정부의 모습은 지난해 7월 5조원대의 부실이 발견된 대우조선에 신속하게 4조2,000억원 지원을 결정했던 것과 다르다. 이미 한진그룹 차원에서 2조2,000억원의 자구안을 마련했는데도 추가 자구안을 요구하고 구조조정 원칙만 강조하다 화를 키웠다.
한진해운 사태가 사실상 예고된 참사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비리로 얼룩진 대우조선 사태와 대우조선 지원을 결정한 청와대 서별관회의 논란 등으로 자칫 한진해운을 지원했다가 청문회에 설 수 있다는 우려로 관료들의 몸 사리기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피해액이 최대 17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업계의 우려가 결코 과장이 아닌데도 무시되고 금융부실 최소화에만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니 서별관회의보다 관료들의 ‘변양호 신드롬’이 더 큰 문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 해운업이 붕괴되는 것을 막으려면 이제라도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대우조선 트라우마에 빠져 한진해운 선박이 유령선이 돼 세계 각지를 떠도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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