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야구 해설가로 활약하며 큰 인기와 사랑을 받은 하일성(68)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야구계의 큰 별이 또 하나 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56분쯤 하일성씨는 서울 송파구 삼성동 본인의 사무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하씨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려던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문자메세지가 발견돼, 현재 경찰은 하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고인은 1949년 2월 18일 서울에서 태어나 성동고등학교 다닐 때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67년 경희대학교 체육학과에 야구 특기생으로 입학했지만 곧바로 야구를 그만둬, ‘야구 선수 하일성’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씨는 1969년 후반 육군 백마부대에서 복무하며 베트남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대학교를 졸업한 후 경기도 김포 양곡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잊지 못한 아내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양곡고등학교에서 환일고등학교로 옮겨 체육교사 생활을 이어오다 1979년 동양방송에서 처음으로 야구 해설을 시작했다.
1979년 고인에게 야구 해설을 권유했던 유명 배구 해설 위원 오관영 씨는 고인과 환일고등학교 교사직 선후배 사이였다. 타고난 말재주가 있었던 고인은 경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친근한 해설을 해 단숨에 인기 해설자로 떠올랐고, 이후 KBS 등에서 오랜 기간 야구 해설가로 활약하며 “야구, 모르는 겁니다” 등 쟁쟁한 명언을 남기기도 하는 등 야구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일성 씨는 2006년엔 5월 부터 2009년 4월까지 한국야구위원회, KBO의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야구 행정가로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오랜 기간 몸담았던 해설계를 떠나 제 11대 KBO 사무총장을 맡은 그는 행정적으로 KBO 리그가 발전하는 데 힘을 보탰다. 또 한국 야구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차지할 때 국가대표팀 단장으로 영광의 시기를 함께하기도 했다.
한편 하씨는 지난 2014년 4월 초 지인으로부터 프로야구단 감독에게 부탁해 지인의 아들을 입단시켜달라는 청탁을 받고 5,000만원을 챙긴 뒤 성사시키지 못해 사기 혐의로 고발 당했고, 현재까지 재판을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아인턴기자 leejaea55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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