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청와대에서 이뤄진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 간 회동은 덕담을 주고받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남색 재킷에 하늘색 셔츠, 회색 바지 차림의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접견실에 먼저 입장한 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차례로 맞으며 “어서 오세요”라며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지난 새누리당 8·9전당대회 직후 이정현 당 대표와 지도부 오찬회동을 하면서 날씨와 올림픽을 화제로 인사말을 나눴던 것과는 달랐다. 개인 관심사를 화제로 인사말을 길게 나누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 이날 박 대통령과 야당 대표들 간 안보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그리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의 거취 등을 놓고는 적지 않은 이견을 드러냈다. 민생 관련만 이견이 좀 좁혀졌을 뿐이다. 이날 회동은 서로의 이견을 좁히기 위해 마련한 자리지만 청와대와 야권 간 적지 않은 갈등을 예고하는 1시간55분이었다.
3당 대표와 청와대 오찬을 가진 것은 20대 들어 처음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5차 핵실험 등 엄중한 안보위기 상황과 해운·조선 구조조정, 추경 등 민생 현안이 뒤엉켜 어느 때보다 더 많은 화제들이 테이블에 올랐다. 박지원 위원장은 회동 직후 브리핑에서 “지난 5월 박 대통령과 3당 원내대표 회동 때는 열네 가지를 제안했지만 이번에는 스무 가지를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석 달 전보다 대화 주제가 줄어든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늘어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해 국제사회 제재를 더 강화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박지원 위원장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수위 조절에 나섰고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청와대와 야당 간 이견을 그대로 노출했다. 박 대통령은 “북이 추가 도발을 예고하는데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올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강조했지만 야당은 대화를 먼저 앞세워 김을 빼버린 것이다. 추미애 대표의 “대북 특사 파견이 필요하다”는 건의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 “고려 안 하고 있다”고 짧게 부정했다. 청와대와 야당 간 이견이 다시 한번 드러난 셈이다.
박지원 위원장은 회동 직후 브리핑에서 “북 핵실험에 대해서는 모두가 규탄했지만 해결 방안에는 이견을 보였다”며 이날의 회동 분위기를 한마디로 압축해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는 자위권적 차원이고 초당적 협력을 부탁한다”고 협조를 요청했지만 두 야당은 외면했다. 박 대통령의 사드배치론에 2야 대표가 반대를 표명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안보의식과 2야 대표의 안보의식이 너무 차이가 나 앞으로 대북 정책이나 안보외교 정책을 놓고 갈등을 예고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보뿐 아니라 추석을 앞두고 민생 문제도 집중 거론됐다. 1조원이 넘는 체불임금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 모두가 시급한 해결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의 거취를 놓고 박지원 위원장은 조속한 사퇴를 건의했지만 박 대통령은 “특별수사팀 수사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들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홍용표 통일부 장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김재원 정무수석 등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원형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 염동열 새누리당 수석대변인, 윤관석 더민주 수석대변인,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이 배석했다. 추미애 대표는 회담이 시작하기 전 자그마한 소형 쇼핑백에 USB를 담아 박 대통령에게 선물로 전달했다.
/김홍길기자 wha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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