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브리티시오픈이 열렸던 스코틀랜드의 로열 트룬 골프클럽 18번 홀. 필 미컬슨의 5m 버디 퍼트가 홀컵을 살짝 훑고 나오고 말았다. 그 순간 미컬슨의 캐디는 그린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고 갤러리들의 한숨 소리가 링크스에 울려 퍼졌다. 이 퍼트가 성공했다면 역대 메이저대회 18홀 최소타 기록(62타)을 세울 수 있었던 아쉬운 장면이었다. 남자 골프에서 메이저 대회 18홀 ‘62타’는 매직넘버다. 1973년 조니 밀러가 첫 63타 기록을 세운 후 62타는 아무도 밟지 못했기 때문이다.
골프는 흔히 기록의 경기로 불린다. 기네스북 스포츠 분야에서 가장 많은 기록을 보유한 게 골프일 정도다. 명예의 전당이니 불멸의 숫자니 하면서 유독 기록경쟁을 부추기는 운동이기도 하다. 역사상 처음으로 100타가 깨진 것은 1767년으로 골프가 창안되고 나서 300년 후의 일이다. 이때 세운 기록이 94타였지만 이후 86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니 골프가 얼마나 어려운 운동인가를 실감하게 만든다.
메이저대회를 제외한 미국 프로골프(PGA)대회에서는 8월에 신기록이 탄생했다. 짐 퓨릭이 트래블러스 챔피업십에서 58타로 PGA투어 18홀 최소타수를 경신한 것이다. 1977년 멤피스 클래식에서 알 가이버거가 59타를 기록한 후 약 40년 만의 일이다. 무려 61만3,000 라운드가 치러진 끝에 59타의 벽을 깬 셈이다. 퓨릭은 “내 몸 안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경기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무리 실력자라도 골프의 신이 허락해야만 기록을 세울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18일 끝난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전인지가 21언더파 263타로 남녀 메이저 대회 최소타의 대기록을 세웠다. 그간 여자대회에서는 19언더파가 최고였고 남자도 20언더파였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인지는 태극기를 두른 채 “골프야말로 팀 스포츠”라고 소감을 밝혔다. 터널에 갇힌 대한민국에 절실한 것도 이런 팀플레이 정신이 아닌가 싶다. / 정상범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